“집에 있자니 짜증…나가면 돈”… ‘휴테크 전략’ 있어야

  • 입력 2005년 8월 19일 14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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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조적 여가 소외: “아예 놀 수 없어요”

저소득층은 주말에도 일을 할 수밖에 없거나, 노는 데 쓸 돈이 없는 ‘여가 소외’ 계층이다. 미디어 다음의 토론방에서 누리꾼 ‘곰보빵’(ID)은 “있는 사람들은 여행을 다닌다지만 없는 집의 아이들은 일 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세상이 서글퍼진다. 누구를 위한 토요 휴무제인가”고 썼다.

한국남성학연구회장 정채기(44·강원관광대 교수) 씨는 “질 높은 삶에 대한 욕구는 커졌지만 실제 소득으로 이를 뒷받침할 수 없는 저소득층은 가장뿐 아니라 주부까지 여윳돈을 벌기 위해 노동 현장으로 내몰린다”고 지적했다.

이런 관점에서 주말이나 야간에도 일하는 투잡스나 스리잡스족이 확대되는 것도 주 5일제의 부작용으로 볼 수 있다. 저소득층은 줄어든 노동 시간으로 인한 소득의 감소를 보전하기 위해, 중산층은 늘어난 여가 시간으로 증가한 소비를 보충하기 위해 투잡스족을 지원한다. 지난달 7일 잡링크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78.6%가 투잡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가를 즐기라는 주 5일제가 오히려 여가 시간에 일을 찾는 기대 밖의 결과를 낳는 것이다.

○ 자발적 부적응: “노느니 일을 하지”

산업화 시대 휴일을 반납하고 야근을 밥 먹듯 하는 게 회사원의 덕목이었다. 사회 분위기가 크게 바뀌긴 했지만, 아직도 이런 근무 태도를 ‘덕목’으로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주 5일제가 시행된 뒤에도 밀린 일을 처리해야 한다며 출근하는 이들이 그런 사례.

베네치아건설 안현진(36) 부사장은 주 7일 근무자다. 주말에는 전국을 돌며 땅을 보러 다니거나 업무와 관련된 모임을 갖는다. 그는 휴식보다 일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아내와 아이들은 “아빠는 왜 일만 하느냐”고 불평을 털어놓지만, 그는 “젊었을 때 열심히 벌어 놓아야 노후가 편하다. 휴식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고 말한다.

홍보대행사 애플트리 안재만(36) 사장도 휴일에 출근한다. 미혼인 그에게 약속도, 사람도 없는 휴일의 사무실은 업무를 정리하는 데 가장 좋다고 그는 말한다. “주말에 정리하지 않으면 한 주 내내 허둥댑니다. 이게 제가 쉬는 방식인 거죠.”

안 사장의 쉬는 방식은 가족이 있는 기혼자들은 엄두도 내기 어렵다. 이로 인해 미혼자들은 주말의 여가를 통해 즐길 수 있는 자유를 결혼 생활과 바꾸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주 5일제로 인해 결혼 생활보다 개인적 여유를 즐기려는 독신자가 늘어나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주 40시간 근무제가 실시된 뒤 25∼49세 독신 가구가 100% 가까이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미혼인 아디다스 트렌드마케팅부 양은경(36) 차장은 “주말이 늘어나면서 골프와 단 체조 등 다양한 취미 생활을 즐기는데 결혼한 친구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내가 누리는 자유로운 여가와 발전 가능성을 포기하면서 결혼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 거창하지 않아도 자기만의 재미를 찾아라

잘 쉬면 업무의 능률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 문제는 잘 쉬는 방법이다. 전문가들은 주 5일제 시행 이후 잘 쉬는 문제는 개인 차원이 아니라 기업적 사회적 차원에서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 캐나다 일본에는 △여가 인프라 구축 △여가 프로그램 운영 및 여가 컨설팅 △전문인력 양성 등을 전담하는 부서가 별도로 있다. 한국에는 일부 기업이 사원 대상 여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정부 차원의 대응책은 없다. 국민여가생활진흥법(가칭)을 마련하려는 입법 시도가 있었으나 관심을 얻지 못해 자동 폐기된 적도 있다.

명지대 여가정보학과 김정운(44) 교수는 “한국인은 돈을 들여 거창한 것을 해야만 놀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어 여가를 즐기는 방법 자체가 상대적 박탈감이나 열등감을 주기도 한다”며 “자신만의 재미를 찾아 나서는 방법을 사회적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休? “휴~” 일그러진 장밋빛 주말의 꿈<1>

▶ 주말 잘 보내야 회사일도 잘한다

글=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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