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休? “휴~” 일그러진 장밋빛 주말의 꿈

  • 입력 2005년 8월 19일 03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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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부장인 조모(42) 씨. 그는 주 5일 근무제 시행 이후 주말마다 골머리를 앓는다. 가족 나들이 코스도 짜야 하고 아이들과 밀린 ‘대화’도 해야 하지만 마땅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는 차라리 먼 친척들의 경조사가 반갑다. 핑계를 댈 수 있으니. 조 씨는 “우리 또래 남성들은 노는 방법을 교육받지 못했다. 문화 체험도 생소하고 야외 나들이도 매번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박모(38·회사원) 씨는 또 다른 고민이 있는 경우. 그도 주 5일제 이후 주말이 두렵기만 했다. 부부 사이에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지만, 발기부전증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2년 전 처음 증상을 느꼈을 때 병원에 가기 쑥스러워 ‘피곤하다’ ‘야근이다’는 핑계로 아내를 피해 왔지만, 주 5일제 시행 이후 피할 길도 없어졌다. 주말 여행에서도 그러자 아내는 의심의 눈초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결국 창피를 무릅쓰고 병원을 찾았다.

주 5일 근무제가 본격 시행된 뒤 한 달 반이 지났다. 많은 이들은 주말 연휴가 가져다줄 장밋빛 여가를 점쳤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잘 노는 방법이나 가족들과 잘 지내는 방법에 서툰 이들에겐 주말이 부담으로 다가온다.

최근 인터넷 매체 미디어다음이 개설한 주 5일제 관련 토론방에서도 “그림의 떡” “못사는 놈 숨통 조이는 일” 등 부정적 의견이 많이 올라 왔다. 지난달 28일 취업 포털사이트 ‘잡링크’가 직장인 103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6.8%가 “주 5일제 실시 이후 업무 스트레스가 높아졌다”고 답하기도 했다. ‘주 5일제 부적응자’들의 목소리도 만만찮은 것이다.

○ 기술적 부적응: “어떻게 놀아야 해요?”

‘주말은 가족과 함께.’ 당연한 말이지만, 가족과의 접촉 빈도가 낮았던 이들은 잠재된 갈등이 느닷없이 표출되는 바람에 당황하기도 한다. 가족과의 접촉이 늘어나면서 의견이나 감정의 충돌이 잦아지는 것.

중견기업에 다니는 김모(40) 씨는 지난달 회사에서 주 5일제를 실시한 뒤 부인과의 사이가 안 좋아졌다. 주말에 부인이 아이를 야단치는 것을 보고 “애가 그럴 수도 있지” 하며 감쌌다가 “주 5일제라고 집에 들어앉아 교육에 방해만 된다”는 핀잔을 들었다. 평일 대휴(代休)로 집에서 쉬려고 하면, 부인이 일이 있다며 외출해 집에서 혼자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한다. 그는 “내 탓이지만 주 5일제를 잘 지낼 수 있는 여가 스킬의 필요성을 절감한다”고 말했다.

남성 전용 상담전화인 ‘한국 남성의 전화’에도 “주 5일제 때문에 이혼 당하게 생겼다”는 호소가 잇따르고 있다. 40대 초반의 한 남성은 “다른 사람들은 주 5일제로 주말마다 문화생활을 즐긴다는데 당신은 그런 아이디어도 없냐”고 핀잔을 주는 아내와 다투다가 끝내 이혼 이야기까지 나왔다고 호소해 왔다. 다른 여성(30)은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지내야 하는데 남편은 ‘쉬고 싶다’며 집에만 있어 짜증스럽다”고 상담을 해오기도 했다.

이옥이(55) 소장은 “주 5일제 관련 상담 사례가 벌써 수십 건”이라며 “‘잘 노는’ 교육을 받지 못한 한국 남성들에게 늘어난 주말이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주말 여가가 늘어나면서 이혼율이 높아진 사례도 있다. 독일 볼프스부르크 시에서는 1994년 도시 거주자 대부분이 근무하는 자동차회사 폴크스바겐이 주 4일 탄력근무제를 실시하자 전년도에 비해 이혼율이 70% 증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 休? “휴~” 일그러진 장밋빛 주말의 꿈 <2>

▶ 주말 잘 보내야 회사일도 잘한다

글=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사진=강병기 기자 arch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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