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호 칼럼]盧정권을 평가하는 3대 기준

  • 입력 2005년 8월 18일 03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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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 노무현 대통령 시대의 공(功)과 과(過)를 평가한다면? 과는 덮어두고 우선 공만을 거론해 본다면 나는 ‘참여정부’의 가장 큰 업적의 하나는 이 나라의 정치적 공론권을 활성화시켰다는 데에 있다고 본다.

요즈음 언론에서 매일 만나는 논설 논평 등은 그 양과 질에서 일찍이 한국 사회가 경험하지 못했던 수준의 것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그처럼 활성화된 논의의 중심엔 언제나 노 대통령이 있다. 어느 신문 오피니언 면의 내용분석에 의하면 대통령을 주제로 한 글이 단연 랭킹 1위로 전체 논설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던가. 그러한 분석 결과로 ‘대통령 중독’이란 신조어(新造語)조차 내놓고 있다.

대통령의 언행이 숱한 화제를 낳고 부단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에는 부정 긍정의 양면이 있다. 민주주의란 단순히 교과서의 고전적인 정의 속에 안주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변화와 사회변동에 따라 끊임없이 재정의(再定義)됨으로써 비로소 활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자유, 인권, 시장 등 민주주의 원리를 위태위태케 하는 참여정부의 갖가지 아슬아슬한 행보는 그럼으로써 잠자던 공론권을 각성시키고 활발한 발언을 유발시켰다면 그것은 긍정적인 측면이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언행이 쉬지 않고 찬반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신장이라기보다는 많은 사람에게 어떤 ‘위기의식’을 느끼게 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부정적인 측면이다.

오늘날 대통령의 언행에 대한 찬반으로 공론권이 양분되고 이념갈등이 차가운 내전(內戰) 상황으로 치닫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면 이것은 가부간에 한국 정치의 ‘한계상황’임에 틀림없다. 원래 죽음에 직면한 인간의 실존상황을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는 ‘한계상황’이라 일컬었다. 한국정치의 한계상황이란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실존이 위태로운 것으로 느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한 위기감은 김대중 대통령 정부 때부터 급속히 추진된 대북정책에서 비롯되었다.

김·노 두 정권의 대북정책이 빚어낸 한계상황의 인식을 흐리게 하고 있는 데에는 사회학자 함인희 교수의 말을 빌리면 대북정책의 긴요한 고비마다 연출되는 ‘정치의 이벤트화’가 결정적 기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2000년 6월의 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의 ‘분단’상황을 국가 정상의 수준에서 공식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통일’이 앞당겨진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이벤트로 연출되었다.

금년 광복 60주년 행사는 북의 대표단을 초청하여 다시 한번 통일이 눈앞으로 다가온 것처럼 갖가지 화려한 이벤트를 마련했다. 그럼으로써 8월 15일은 광복뿐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가 탄생한 기념일이라는 사실을 갖가지 다른 행사의 그늘에서 대한민국 정부 스스로 무시하고 매장하는 꼴이 돼버렸다. 대한민국 국가 실존의 한계상황이라 보아 잘못인가.

이벤트 중심의 햇볕정책으로 자칫 눈이 흐려지기 쉬운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 나는 그를 평가할 3대 기준(three essential)을 당시 제시했다.

첫째, 한반도에 전쟁 위험이 제거되고 평화가 보다 더 굳혀졌는가. 둘째, 방북 관광이 아니라 이산가족을 위시한 남북한 주민들이 자유롭게 상호 방문할 수 있게 됐는가. 셋째, 당과 정부의 고위층이 아니라 궁핍한 2000만 북한동포의 삶이 나아졌는가. 이 세 가지 기준은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평가하는 데에도 계속 유효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갈수록 사람의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오늘의 현란한 이벤트 정치상황 속에서 노무현 정부의 행적과 행방을 가늠해 보는 3대 기준을 마련해 보았다.

첫째, 노 정권은 ‘대한민국’의 국가와 국헌과 국민을 수호하는 데 기여했는가. 둘째, 노 정권은 정치 경제 사회 이념의 여러 차원에서 국민을 통합시키는 데에 기여했는가. 셋째, 노 정권은 경제개발을 통해 고용기회를 창출하여 국민복지와 국가경쟁력 향상에 기여하였는가.

다른 논쟁에는 더는 귀도 입도 열지 말고 나는 다만 이 세 가지 기준에 따라 앞으로 노 대통령의 정치를 평가하려 한다.

최정호 객원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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