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민족끼리’ 합창 이후가 문제다

  • 입력 2005년 8월 18일 03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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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노무현 대통령은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했던 북측 대표단을 만나 “새 역사가 만들어진다는 느낌을 받았고, 국립묘지 방문은 참으로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 평가처럼 국립묘지 참배를 시작으로 국회 및 김대중 전 대통령 방문으로 이어진 북측 대표단의 거침없는 ‘광폭(廣幅) 행보’는 남북관계 변화를 느끼게 할 만했다.

하지만 축전행사는 북측이 초점을 맞춘 ‘민족공조’라는 의제에 남측이 시종 끌려 다닌 양상이었다. 보수단체의 ‘김정일 독재 폭정종식’이라는 구호는 행사장 곳곳에서 터져 나온 ‘민족끼리’와 ‘미군철수’ 주장에 압도당했다.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의 남측본부 홈페이지에는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의 영도따라… 불퇴전의 용기를 가다듬고 있다’는 글까지 올랐다.

축전 기간 중에는 남측의 또 다른 ‘북한 눈치 보기’ 사례도 전해졌다. 통일부가 지난 5년간 북한에 지원한 식량차관(借款) 규모를 실제보다 2조 원 이상이나 줄여 발표했음이 드러났고, 국가인권위원회가 2003년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려다 시민단체의 반발을 우려해 포기했다는 회의록 내용이 공개됐다.

남북관계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분위기’보다 ‘실질적 진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체득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축전에 앞서 열린 실무회담에서 북측이 제3차 장성급회담 개최를 무산시킨 것은 짚어 봐야 할 대목이다. 북한의 ‘민족끼리’ 공세가 이달 말 재개될 제4차 6자회담에서 ‘평화적 핵 이용권’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정지작업이라는 분석을 낳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핵 문제 해결 없는 ‘민족끼리’는 모래성과 같다. 북한의 핵카드가 계속 유효하게 남아 있는 한, 남한의 경제적 우위는 체제 승리의 증거라기보다 북에 대한 끊임없는 경제지원의 근거로 이용되기 십상일 것이다. 결국 우리 국민은 ‘줄지 않는 국방비와 늘어나는 대북 지원’이라는 이중부담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니 다수 국민이 ‘민족끼리’를 합창하는 데 흔쾌히 동참하지 못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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