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실장의 퇴진을 계기로 노 대통령이 당과 정부의 협조를 강화하고 여권 내의 분위기도 새롭게 한다는 차원에서 청와대와 내각의 인적 쇄신을 단행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집권 후반기 대비 포석?=김 실장의 퇴진은 노 대통령이 지난달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하는 등 정국의 대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지지도가 20%대까지 추락해 있는 지금 정국의 주도력을 복원하는 것부터가 발등에 떨어진 과제다. 내년 6월에는 차기 대선의 전초전이 될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고, 지방선거 이후에는 정치권 전체가 급속히 개헌 국면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그야말로 정치 지형을 가를 고비들이 꼬리를 물게 되는 셈이다. 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노 대통령의 힘은 급속도로 약화될 것이 뻔하다.
이런 정치적 환경 때문에 집권 후반기 들어 노 대통령은 더욱 혹독한 상황을 맞게 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여권 전체를 아우르면서 험난한 정국을 돌파해 낼 수 있는 새로운 진용을 갖추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핵심 측근인 이호철(李鎬喆) 씨가 최근 대통령국정상황실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등 386 측근들이 전진 배치된 것도 이런 ‘친정(親政) 체제’ 강화의 흐름과 무관치 않다.
▽후임 비서실장은 누구=‘관리형’이었던 김 실장의 후임에는 ‘정책정무형’ 인사가 유력하다는 게 청와대 기류다. 김 실장도 사의를 표명하면서 노 대통령에게 “나보다 정치력이 더 있는 분이 오는 게 좋겠다”고 건의했다고 한다.
청와대 내에서는 김병준(金秉準) 대통령정책실장이 가장 무난하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대학교수 출신으로 정책에 밝으면서도 정치적 감각도 있다는 것. 노 대통령과는 1993년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설립했을 때 연구소장을 맡은 이후 10여 년 동안 한 배를 탄 사이다.
2002년 대선 때 자문교수단의 일원이었던 허성관(許成寬) 전 행정자치부 장관도 후보로 거론되지만, 그가 기용된다면 비서실장보다는 정책실장이 더 적임이라는 얘기다. 경영학 교수 출신인 허 전 장관이 김병준 실장의 후임 정책실장을 맡아 ‘김병준-허성관’ 체제가 구축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열린우리당 쪽에서는 당과 청와대의 가교 역할을 확실히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인을 선호하지만 청와대 쪽은 당정분리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정치인 기용은 어렵다는 분위기다.
▽청와대 및 내각 개편으로 이어질까=청와대 측은 비서실장 교체가 청와대 참모진이나 내각의 개편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노 대통령은 최근 김우식 실장이 사의를 표명했을 때도 비서실장 교체가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을 우려하면서 극구 만류했다고 한다.
실제로도 청와대 참모진과 내각은 큰 폭의 변화가 어려운 상황이다. 내각의 경우 올해 들어서만 경제부총리를 비롯해 10개 부처 장관이 바뀌었다. 비록 실현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내각의 전면 개편을 전제로 향후 대연정을 제안해 놓은 것도 현 단계에서의 내각개편을 제약하는 요인이다.
김 실장을 내각의 부총리급으로 중용하더라도 그 시점은 연말쯤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연세대 총장 출신인 김 실장은 “일단 학교로 돌아가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연구 및 기념사업을 하고 싶다”고 밝히고 있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 金실장의 1년6개월 … 청와대-보수진영 가교역할
김우식 대통령비서실장은 지난해 2월 부임한 이후 청와대와 보수진영 간의 가교 역할을 해 왔다. 보수 원로들을 수시로 만나 “일각의 우려와는 달리 노무현 대통령의 사상은 의심스러울 게 없다”고 설득하기도 했다.
집권 초반기를 맡은 문희상(文喜相) 전 실장이 당과 정부를 잇는 가교 역할에 무게를 뒀다면 김 실장은 대통령 탄핵사태 등으로 표출된 갈등을 추스르는 ‘관리형 실장’으로서의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김 실장은 정치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온건한 노선을 견지해 왔다. 지난해 말 이른바 ‘4대 법안’의 국회 처리 문제가 현안으로 떠올랐을 때 김 실장은 국회 근처에 승용차를 대놓고 열린우리당 지도부에 전화를 해 “절대로 파국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강행 처리를 반대한 일화도 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일각에서는 비(非)정치인 출신인 김 실장이 여권 전체를 아우르는 정치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는 불만을 제기해 왔다. 눈에 드러나지 않게 공직사회 내의 ‘연세대 인맥’을 챙겨 왔다는 지적도 받았다.
김 실장은 올해 1월 초 개각 때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이인 이기준(李基俊)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인선 파동이 나자 노 대통령에게 “책임을 지겠다”며 사표를 냈으나 반려됐다.
4월 중순경에도 대일(對日) 강경발언으로 노 대통령의 지지도가 50%대로 올라서자 “내 소임을 다했다”며 또다시 사퇴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이어 최근 노 대통령이 대연정을 제안하는 등 집권 후반기 이후의 정국 반전을 모색하고 나서자 김 실장은 “새 진용을 갖추기 위해 필요하면 언제라도 물러나겠다”며 거취 문제를 노 대통령에게 일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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