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돌 ‘재계 맏형’ 전경련 “생일 잔칫상은 무슨…”

  • 입력 2005년 8월 17일 03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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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호 회장
강신호 회장
《사흘 동안의 연휴를 끝낸 16일. 대부분의 직장인은 출근길을 서둘렀지만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직원들은 하루 더 휴무를 했다. 이날은 1961년 설립된 전경련이 창립 44주년을 맞는 날. 제조 무역 건설 등 업종별 단체 65개와 한국의 대표기업 380개사를 회원사로 두고 있는 전경련의 ‘생일’이다. 하지만 ‘경제단체의 맏형’을 자부하는 전경련은 이날 생일 잔칫상(창립기념식)도 차리지 않았다. 요즘 전경련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유

과거 개발경제시대에 정부와 함께 ‘한국경제호(號)’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평을 듣는 전경련은 요즘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 최대 그룹 삼성이 연루된 이른바 ‘X파일’ 사건과 두산그룹가(家)의 형제 간 분쟁,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파업사태 등 재계를 둘러싼 각종 현안이 올여름을 뜨겁게 달구었지만 전경련은 ‘조용한 절간’ 분위기였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현실적으로 전경련이 나서 무슨 말을 하기도 어려웠다.

전경련이 ‘입 조심’을 하는 모습은 곳곳에서 눈에 띈다. 전경련의 한 간부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힘센 정부’에 재계가 끌려 다니면서도 할 말은 한다는 분위기였지만 올해는 정부, 정치권, 재계가 서로 눈치를 보는 시기라 당분간 조용히 지내는 게 낫다”고 말했다.

올해 2월 강신호(姜信浩) 회장 2기 체제가 출범한 뒤에는 더 조용해졌다. 관료 출신의 조건호(趙健鎬) 부회장과 하동만(河東萬) 전무가 영입된 뒤엔 ‘목소리를 높여 정부와 부딪치기보다는 실리를 챙기겠다’는 전략을 펴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한때 잠잠해졌던 한국 사회의 반(反)대기업 정서가 최근 재계를 둘러싼 일련의 잡음으로 다시 높아지고 있는 것도 전경련을 고민스럽게 하고 있다.

국성호(鞠成鎬) 전경련 미디어홍보팀장(상무)은 “올해는 44주년이어서 별도 행사를 하지 않았지만 45주년을 맞는 내년에는 대형 행사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했지만 군색하다.

○ 주요 그룹의 적극적 참여 없어 한계

재계에선 전경련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많다.

무엇보다도 4대 그룹 총수의 참여가 부족해 재계 대표단체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삼성그룹의 한 임원은 “전경련이 한때 삼성만을 대변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 전경련은 재계 대표로서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지 정체성을 찾기가 무척 어렵다”고 꼬집었다.

LG그룹 관계자도 “전경련이 각종 위원회 중심으로 일을 하려고 하다 보니 과거 막강한 재계 대표로서의 위상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중견그룹인 동아제약 회장인 강 회장이 거대 전경련을 이끌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도 없지 않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전경련이 힘을 발휘하려면 4대 그룹 총수가 총대를 메고 나서야 한다”며 “그 외에는 누가 이 자리를 맡더라도 재계를 통일된 목소리로 끌고 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당분간 그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전경련의 고민은 깊어 간다.

44회 생일을 맞은 전경련은 지금 숨을 죽이고 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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