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537>卷六.동트기 전

  • 입력 2005년 8월 1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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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관중(關中)은 그 땅이 천하의 서북쪽에 치우쳐 우리 대군이 모두 그리로 몰려가면 비다시피 된 중원(中原)에서 무슨 변괴가 일어날지 모릅니다. 조나라에 있는 한신의 대군은 말할 것도 없고, 제왕(齊王) 전광의 무리도 아직은 대왕의 명을 받들고 있지 않습니다. 비록 대왕의 위엄에 쫓겨 꼬리를 사리고 숨었으나 팽월도 적지 않은 무리를 거느린 채 하수(河水)가를 떠돌고, 경포 또한 회수(淮水) 남북을 오가며 대왕께 앙갚음하고자 이를 갈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곳곳에서 불측한 무리가 저마다 시커먼 속을 드러낼 것인즉, 대왕께서는 가볍게 전군을 관중으로 몰아넣으셔서는 아니 됩니다.

한왕 유방을 쫓아 관중으로 들어가는 일은 저희 둘이서 맡아 할 것이니, 대왕께서는 이대로 형양과 성고 사이에 걸터앉으시어 오창의 곡식으로 장졸을 먹이면서 중원을 노려보고 계십시오. 그리되면 아무리 간 큰 도적이라도 함부로 천하를 어지럽히지 못할 것입니다.”

듣고 보니 패왕 항우에게도 그 말이 옳아 보였다. 그 자리에서 종리매와 용저에게 각기 3만 군사를 갈라주며 말하였다.

“그대들은 어서 빨리 한왕 유방을 뒤쫓아 그 목을 잘라오라. 유방이 그 사이 제 소혈 역양((력,역)陽)에 들었거든, 역양성을 우려 빼서라도 반드시 그 목을 가져와야 한다.”

이에 종리매와 용저가 이끄는 초나라 군사는 하수(河水) 남북 두 갈래로 길을 나누어 서쪽으로 밀고 들어갔다.

먼저 하수 남쪽 길을 잡고 한왕 유방의 자취를 쫓던 종리매는 이틀을 달려 낙양에 이르렀다. 형양과 성고를 잇달아 떨어뜨린 기세에다 이틀이나 무인지경 달리듯 해온 터라 겁이 없어진 종리매는 대뜸 낙양성을 에워싸고 그곳을 지키는 수장(戍將)을 불러냈다.

“나는 패왕의 명을 받들어 성고에서 쥐새끼처럼 홀로 살고자 달아난 한왕 유방을 사로잡으러 왔다. 성안에 유방이 있거든 어서 묶어 바치고 항복하라. 그러면 상장군에 만호후(萬戶侯)를 내릴 것이요, 헛된 고집으로 맞서려들면 성이 깨어지는 날 성안에 살아 숨 쉬는 것은 모두 산 채로 땅에 묻히게 될 것이다!”

문루에 나온 장수를 보고 종리매가 그렇게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자 한나라 장수가 껄껄 웃으며 받았다.

“천리 밖 조나라에 계시는 우리 대왕을 이곳 낙양성에 와서 찾으니 저런 미친놈을 보았나? 대군을 이끌고 여기까지 온 것으로 보아 아주 이름 없는 졸개는 아닌 듯한데, 도대체 너는 누구냐?”

“나는 초나라 대장군 종리매다. 내 이름을 들었거든 어서 성문을 열고 항복하여 목숨을 건져라!”

성난 종리매가 그렇게 소리쳐 자신을 밝혔다. 그 장수는 그래도 놀라기는커녕 투구까지 들쳐 얼굴을 내보이며 비웃듯 소리쳤다.

“이놈 종리매야. 너는 벌써 대한(大漢) 농서도위((농,롱)西都尉) 역상((력,역)商)을 잊었느냐? 거야현(巨野縣)에서 땅에 떨어질 그 목을 한번 붙여주었거늘, 이제 와서 다시 떼어주기라도 해달란 말이냐?”

그 말에 종리매도 역상을 알아보고 흠칫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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