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장희]조국의 배신, 무국적 애국지사

  • 입력 2005년 8월 15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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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60주년을 맞았지만 아직도 우리는 광복을 위해 피 흘린 독립유공자에 대해 못할 일을 계속하고 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에 해외에서 사망한 단재 신채호, 석주 이상룡, 여천 홍범도, 부재 이상설, 노은 김규식 등 200∼300명에 이르는 독립유공자들이 무국적, 무호적자로 방치되어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유공자의 명예와 국적을 회복하기 위해 유공자의 자손들이 수십 번 법원을 출입해야 하는 수모와 고통을 겪고 있다. 이것은 모두 이승만 정부와 그를 이은 역대 정부가 독립유공자들의 국적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던 탓이다.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현행 국적법상 1948년 정부 수립 이전에 해외에서 사망한 독립유공자들이 국적을 회복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다. 첫째, 현행 국적법은 국적 취득자로 ‘출생할 당시에 부 또는 모가 대한민국 국민인 자’로 규정하고 있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에 사망한 사람의 국적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둘째, 현행법은 생존하는 자연인의 국적 취득만을 규정할 뿐, 사자(死者)에 대해 국적을 부여하는 것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법률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법 해석론적’ 방법과 ‘입법론적’ 방법이 있다.

해석론적 방법은 법 개정 없이도 1910년 한일강제합방 조약의 무효화와 현행 국적법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을 통해 무국적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 즉 한일강제합방 조약이 무효이기 때문에 독립유공자는 조선인으로서의 국적이 한 번도 상실된 적이 없이 지금도 대한민국 국적 소지자로 승계된다는 것으로, 정부 수립 이전에 사망한 독립유공자도 정부 수립 이후의 국적 소지자와 같은 자격을 지닌다는 견해다. 하지만 이는 실질적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는 추상적 해석론이기 때문에 독립유공자의 후손이 겪고 있는 수모와 고통에 대해 해결책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법무부와 국가보훈처는 안이하게도 이 견해를 택하고 있다.

이 같은 혼란을 근원적으로 막으려면 입법을 통해 명료하게 해결해야 한다. 즉 ‘독립운동에 기여한 조선인으로서 일제 때 무국적 상태로 있다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에 사망한 자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자로 본다’는 조항을 국적법 제9조의 2로 신설하는 것이다. 그 논거로서 1948년 5월 남조선 과도정부 법률 제11호 ‘국적에 관한 임시조례’ 제2조 제1호가 조선인을 부친으로 출생한 자는 조선의 국적을 가지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 점, 1948년 제헌헌법 제100조가 상기 조례를 포함한 현행 법령을 헌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사자의 국적 회복이 현행법상 가능한 것인지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헌법학에서는 사자도 제한된 범위이지만 기본권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견해가 점차 보편화되고 있다. 존엄권이나 명예권의 침해는 사후에도 발생할 수 있고, 이러한 기본권의 침해를 방치해 두는 것은 인간의 존엄이나 인격에 대해 중대한 훼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사망한 독립유공자의 국적 회복을 유공자 본인 및 후손들의 명예회복권의 차원에서 본다면, 이러한 국적 회복 청구권은 충분히 성립된다고 본다.

따라서 대한민국 국회는 일제강점기에 해외에서 무국적 신분으로 투쟁하다가 돌아가신 독립유공자들의 국적과 호적 회복 문제 및 그 자손들의 국내 귀화 절차 간소화를 현행 국적법개정 및 관련 법률 보완을 통해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를 추상적인 해석론에 맡길 것이 아니라 법으로 명백하게 정리하는 것이 혼란을 근본적으로 막고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는 길이다.

광복 60년을 맞은 우리는 현재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일제 식민통치 기간에 해외에서 숱한 고생을 한 독립유공자들을 항상 기억하고, 그들의 공로와 명예를 보존하는 데 한 치의 소홀함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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