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최영묵]구겨진 색동저고리

  • 입력 2005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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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륙과 동시에 자동운항장치로 변경하고 착륙조차 오토로 하는 일이 힘들다면서 외국에 나갔다 하면 골프장으로 직행하느냐.”

긴급조정권 발동이라는 치욕적인 ‘제3자’의 힘에 의해 종료된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노조 파업 과정에서 화제가 됐던 ‘10년차 승무원’의 인터넷 글 요지다.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를 반박하는 한 조종사의 글 또한 만만치 않다.

“국가자격증을 5개씩 가진 조종사들과 3개월 교육받은 승무원들이 같은가. 승객 400여 명의 목숨을 책임져야 하는 조종사들의 땀과, 손님 옷에 커피를 쏟았을 때 흐르는 식은땀이 같은가. 괜히 몇백 달러씩 쓰면서 명품 산다고 온종일 쇼핑해 외화를 낭비하는 승무원들이 그동안 실력 없는 조종사 비행기를 무슨 배짱으로 타고 다녔나.”

아시아나항공 승무원 간에 벌어지는 공박도 심각하다.

“같은 승무원으로서 개인적 악감정을 표출한 것은 회사 망신이라는 생각이다. 조종사들의 영어 실력 때문에 착륙 시 어려움을 겪는다는 근거 없는 주장으로 사원 전체의 사기를 꺾지 말라.”

노조의 주축인 비행학교 출신 조종사들과 비노조원이 대부분인 군 출신 조종사들 간의 반목도 더욱 깊어졌다고 전해진다.

협상의 두 당사자인 노사는 협상 막판에 “대화를 하느니 차라리 긴급조정을 수용하겠다”며 자율협상을 아예 포기했다. 여전히 노사 모두 ‘안전운항’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감정싸움이 더욱 깊어지는 상황이다.

파업은 종료됐지만 노사 간은 물론 노-노, 조종사-승무원, 승무원-승무원의 갈등이 총체적으로 결합돼 심각한 내상을 앓고 있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파업의 후유증이 내상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시아나항공이 그동안 쌓아 온 안전성과 친근감에 대한 신뢰를 자꾸 잃어 가는 것 같다. 휴가철 성수기에 승객들에게 그런 불편을 줄 수가 있느냐. 대한항공이 상대적으로 이미지가 좋아지지 않겠느냐.”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들리는 말이다.

여기에 노조가 경쟁사 노조의 ‘대리전’을 치렀다느니, 경쟁사 사측이 회사 경영진에 잘못된 조언을 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말까지 나오면서 더욱 꼬인 경쟁사와의 관계도 풀어야 할 과제다.

아시아나항공을 둘러싼 안팎의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긴급조정권 발동으로 30일간의 협상시간을 벌었지만 사상 초유의 강제 중재가 내려질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그럴 경우 회사로서는 치명상을 입는 셈이다.

그러나 파업이 끝난 후에도 회사 측은 4800억 원을 손해 봤다는 ‘손익계산서’를 내놓기에 바쁘고, 노조 측은 양대 노총까지 나서 ‘연장전’을 예고하고 있다.

이번 파업은 관련 당사자 모두가 패한 게임이다. 결국 아시아나의 상징인 색동저고리는 구겨졌다. 휴가철에 승객들의 발목을 잡고 회사와 국가 이미지에 막대한 손실을 끼친 ‘귀족노조’가 더 큰 비난을 받고 있지만 강경책으로 일관한 사측은 물론 뒤늦게 부랴부랴 중재에 나선 정부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당사자 모두 마음을 비워야 한다. 12일 시작된 조종사 업무 복귀를 기점으로 조속히 사태를 수습하는 것만이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최영묵 사회부장 ym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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