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신상진]고구려의 눈물, 구경만 할 건가

  • 입력 2005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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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맘때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으로 인해 중국을 비난하는 여론이 하늘을 찌를 듯했었다. 고구려사를 둘러싼 한중 갈등을 정치 문제화하지 않고 학술적으로 해결하는 게 바람직함에도 중국이 자국 외교부 홈페이지의 한국사 소개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 가운데 고구려 부분을 삭제했던 게 발단이었다. 아울러 중국의 부상이 우리에게 기회가 아니라 위협이라는 시각이 확산됐던 기억이 난다.

결국 양국 마찰은 중국 정부가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을 한국에 보내 ‘고구려사 문제의 공정한 해결 및 정치화 방지’ 등의 5개 항을 구두로 합의하는 과정 등을 거쳐 일단 봉합됐다. 한국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라도 북한에 영향력을 가진 중국의 적극적 협력이 필요했고, 중국 역시 주변국과 선린 우호 관계를 강화하는 한편 ‘중국 위협론’을 불식시켜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양국 모두 ‘고구려사 갈등’을 조기에 무마하고자 했던 것. 이에 더해 올 3월 일본 시마네(島根) 현의 독도의 날 조례 통과와 일본의 역사 왜곡 교과서 문제 등으로 한일 관계가 경색되고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것도 고구려사 갈등을 식히는 데 한몫했다.

연간 1000억 달러에 이르는 최대 교역 상대국이며,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협력이 필요한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은 한국의 국익은 물론 동북아 평화에도 결코 이롭지 않다. 이런 측면에서 중국 정부의 ‘정책적 착오’로 빚어진 고구려사 갈등 요인이 잠정적으로나마 봉합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중국 지도부가 고구려사 문제로 한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져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구려사 문제는 당분간 외교 현안으로 부각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의 사실들을 고려하면 고구려사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은 여전히 필요하다.

우선 중국 정부는 ‘조화로운 사회’ 구축을 표방하면서 동북지역 등 낙후지역 개발 정책을 적극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동북3성 지방정부가 고구려 유적들을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면서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 현재 중국은 중국 전역에 수도 없이 산재된 문화유산을 과학적으로 보존하고 관리할 수 있는 예산과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중국 지안, 랴오양, 환런의 고구려 유적지 훼손 현장을 다녀온 동아일보 르포(11일자 A1·3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광개토대왕비 등 고구려사 유물 관리를 위한 한중 협력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공산당과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중국 국민의 열망이 감소하고 있는데, 중국 지도부는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통해 이를 보완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중국은 또 애국주의를 통해 티베트, 대만 등 변방지역에서의 분리 독립 움직임을 사전 저지하려 하고 있다. 중국에서 민족주의와 애국주의가 강화될수록 조선족 등 소수민족에 대한 통합 노력이 심화될 것이며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하려는 유혹도 커질 것이다. 따라서 중국 정부의 민족주의 및 애국주의 교육 동향에 대해서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또 중국 내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은 북한 정권이 장기간 지속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북한의 변화와 통일 한국 이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북한의 변화가 중국 동북지역의 경제·사회적 안정에 미칠 부정적 영향 방지 차원에서도 중국은 ‘동북공정’ 추진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변수를 염두에 두고, 고구려사 갈등을 완화하면서 북한의 미래와 통일 한국에 대한 중국의 협력을 유도하기 위해 우리는 다층적이며 전략적인 대화를 추진해야 한다.

신상진 광운대 교수·중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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