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스님-신부님 족구하던 날

  • 입력 2005년 8월 12일 03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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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짝짝짝” “아이고∼ 짝.”

기쁨의 함성과 안타까움의 탄식이 함께 어울린 열정의 시공(時空)이었다. 비가 살짝 고개를 내민 6일 오전 강원 평창군 오대천 둔치에서 스님들과 신부님들이 문 없는 문을 열고 한마음으로 족구 경기를 가졌다.

한 시간 남짓 웃음바다는 청량한 바람이 되었고, 정성을 다하는 선수들의 발놀림과 머리돌려치기는 보는 이나 듣는 이의 가슴에 투명한 여백을 남겼다.

이 세상에는 부모와 자식, 부부, 친구, 스승과 제자 등 다양한 인연이 있다. 오늘날과 같이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 속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좋은 관계로 만날 수 있다면 행복한 일이다. 아름다운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우선 인(因)인 ‘나’를 맑고 바르게 해야 한다. 내가 깨끗하고 걸림이 없으면 연(緣)인 ‘남’과 저절로 하나가 된다.

‘나’라는 존재는 하늘과 땅의 은혜, 그리고 여러 사람의 사랑과 눈물과 땀의 결정체라 볼 수 있다. 수많은 존재의 도움으로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관계 속의 자신을 보지 못하고, 다툼과 갈등을 일삼는 것은 또 다른 ‘나’와 싸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평화롭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너’와의 관계를 잘 맺어 편안하게 해야 한다.

부처님은 수타니파타에서 “모든 살아 있는 것은 고통을 싫어한다. 그들에게도 삶은 사랑스러운 것이다. 그들 속에서 너 자신을 인식하라. 괴롭히지도 죽이지도 말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존재할 수 있음은 곧 상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차가운 물이 흐르는 청정한 오대산 깊은 계곡에 욕심과 성냄, 어리석음을 하나씩 씻어 보자. 이에 마음의 문이 열리면 개울물은 더 힘차게 골을 씻어 갈 것이며, 욕심 속에 고개 숙였던 소박한 마음이 황소의 금빛 울음으로 다가와 벤 듯 살짝 접힌 초승달 끝자락에 속살을 드러낼 것이다.

결국 신부님들과의 족구 경기는 나와 너, 내 종교와 네 종교, 인간과 자연이 둘이 아닌 하나임을 확인하는 불이공생(不二共生)의 한마당이었다. 그날 우리는 산에서 침묵을 배웠고, 물에서 화합을 배웠다.

정념 스님·오대산 월정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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