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통일 “韓-美 시각차… 北도 평화적 핵이용 권리 있다”

  • 입력 2005년 8월 12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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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鄭東泳)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 겸 통일부 장관이 11일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 권리에 관한 한미의 시각차를 공식 인정함에 따라 이달 말로 예정된 6자회담 속개를 앞두고 파장이 커지고 있다.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 문제는 7일 휴회된 6자회담에서 북-미가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했던 핵심 쟁점. 이런 상황에서 정 장관이 북측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발언 배경=정 장관은 이날 본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한미의 시각차를 인정한 발언에 대해 “북-미가 4차 6자회담 과정에서 당장의 문제가 아닌 미래의 문제를 가지고 대립하는 양상을 보여 협상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면한 핵위협 제거가 본질적이고 중요한 문제라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정 장관의 이날 발언은 6자회담의 속개를 앞두고 교착 상태에 빠진 회담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한국 정부의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볼 수 있다. 즉 북한이 ‘핵무기 폐기’ 원칙에 동의하면서도 ‘평화적 핵 이용 권리’에 집착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북한으로 하여금 6자회담을 지속해 나갈 수 있는 명분을 주자는 것이다. 아울러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는 미국의 대북 강경발언을 막아 보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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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앞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9일(현지 시간) 북한은 미국을 속인 전력(前歷)이 있어 민수용 핵도 허용할 수 없다며 북한을 자극했다.

그러나 정 장관은 북한이 요구한 경수로 건설에 대해선 미국의 입장을 지지했다. 그는 “경수로에는 평화적 이용 목적의 경수로와 (현재 중단된) 신포 경수로가 있다”며 “신포 경수로 대신 전기를 주겠다는 것이 우리 측의 중대 제안이며 신포 경수로는 미국의 반대로 사실상 건설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향후 파장=정 장관의 발언이 파장을 일으키자 통일부 김홍재(金弘宰) 대변인은 “정 장관의 발언 취지는 핵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일반적인 권리를 언급한 것으로 이 문제와 관련해 한미 간 의견 충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논평했다.

그러나 미국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한미 양국은 모두 현재의 부분적 시각차를 인정하지만 이런 문제는 북한의 핵 포기 선언이 나온 뒤에 조율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갖고 노련하게 우회해 가고 있는 상황이었다”며 정 장관의 발언에 아쉬움을 표명했다.

6자회담의 주무 부처인 외교통상부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외교부의 한 당국자는 “6자회담이 속개되면 실질적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가급적 말을 아껴 왔다”며 정 장관이 민감한 사안을 언급한 데 대해 곤혹스러워했다.

반기문(潘基文) 외교부 장관은 9일 내외신 정례 브리핑에서 “핵확산금지조약(NPT) 회원국들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고 의무를 이행할 경우 평화적 핵 이용 권리가 있다. 그러나 북한은 NPT에서 탈퇴했고 국제사회에서의 신뢰 문제가 남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

▼美언론 ‘北인권 비판론’집중보도 …6자회담때 압박 카드?▼

중국 베이징(北京)의 4차 6자회담이 ‘휴회’에 들어간 이후 미국 주류 언론들은 북한의 인권상황에 지면을 할애하는 모습이다.

워싱턴포스트는 10일 고무풍선을 이용해 손바닥 크기의 성경책을 북한으로 날려 보내는 이민복 선교사의 활동상을 기사로 다뤘다.

뉴욕타임스도 전날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고향인 텍사스 주 미들랜드에서 5, 6일 진행된 ‘사막을 흔들라(Rock the Desert)’ 행사를 상세하게 보도했다. ‘보수주의 전문기자’가 현장 취재한 이 기사는 ‘탈북자 공개총살 동영상, 가스실험실 모형물이 행사에 참가한 10, 20대 젊은 층의 관심을 모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류 언론들의 이런 보도 경향은 6자회담 휴회 이후 형성되고 있는 워싱턴의 기류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워싱턴 싱크탱크는 물론 미 행정부 내에서도 ‘부시 행정부가 6자회담의 한계점을 인식하는 순간 북한의 인권상황을 대북 압박수단으로 쓸 것’이라는 관측과 전망이 적지 않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달 북한 인권특사를 임명하려다 국무부의 건의를 받아들여 임명 시점을 6자회담 이후로 미룬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달 말 재개될 4차 6자회담이 끝내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인권특사 임명을 신호탄으로 부시 행정부의 인권 압박이 시작될 것이라는 얘기다.

또 9, 10일자 미국 언론 보도의 특징은 부시 대통령의 고향인 미들랜드 기독교인들의 활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는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의 말을 인용해 “미들랜드 기독교인들은 부시 대통령이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영향을 미친다”고 썼다.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지난달 20일 비공개 석상에서 했다는 말도 향후 미국 정부의 인권 압박 강도를 예상할 수 있게 한다. 그는 탈북자 출신 강철환 조선일보 기자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모든 국가는 존재 이유가 있어야 하지만 북한은 그런 게 없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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