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음하는 고구려]‘고구려’가 中國서 두 번 운다

  • 입력 2005년 8월 11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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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저거 물방울 아냐? 벽화에 습기가 가득 찼잖아.” 5일 오전 중국 지린(吉林) 성 지안(集安) 시 고구려 다섯투구무덤(오회분) 앞에 있는 관광 안내실. 사신도(四神圖)로 유명한 이곳 고구려 벽화를 구경하러 온 한국인들은 중국 측에서 폐쇄회로(CC) TV를 통해 보여 주는 벽화를 보다 놀랐다. 벽화에 물방울이 가득 맺힌 것이 화면으로 생생히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벽화 바로 앞에 세워져 있는 에어컨 근처의 습기가 심했다. CC TV 촬영을 위해 켠 라이트의 뜨거운 열기와 에어컨의 찬 공기가 만나 물방울을 만드는 듯했다. 그뿐 아니라 라이트의 빛과 열기는 1500여 년간 어둠 속에서 숨 쉬어 온 벽화를 훼손할 게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중국인 관리인은 “카메라를 하루에도 수백 차례 돌린다”고 말할 뿐 습기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중국 내 고구려 유적이 지난해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후 무분별한 관광과 ‘고구려사의 중국사 편입’이라는 중국 정부의 정치적 목적의 홍보물로 이용당하면서 신음하고 있다.

중국 당국은 2003년부터 광개토대왕비에 씌워 놓은 유리 보호각의 출입문을 6월 30일부터 개방했다. 누구나 비석 바로 앞까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된 것. 문화재 전문가들은 비석을 유리 속에 가둬 놓음으로써 공기의 흐름을 차단한 것도 문제지만, 폐쇄된 공간에 수많은 관광객이 드나들면 사람의 입김 때문에 비석의 부식이 가속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광개토대왕의 ‘눈물’인가
2003년 광개토대왕비에 유리 보호각을 설치한 중국 정부가 6월 30일부터 보호각 출입문을 개방했다. 일반 관광객들이 비석 바로 앞까지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으며 발치에는 관광객들이 던져 놓은 동전과 지폐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비석 몸통의 갈라진 틈새에 중국 당국이 주입해 놓은 본드가 검붉게 흘러내리며 1500여 년의 풍상을 견뎌 온 비석의 몸통을 더럽히고 있다. 사진 제공 KTF 고구려역사유적답사단

비석을 자세히 살펴본 서영수(徐榮洙·단국대 교수) 고구려연구회 회장은 “비석이 갈라지는 걸 막기 위해 갈라진 틈새에 본드를 주입했는데 그 본드가 흘러나와 비석을 검붉게 물들이고 있다”며 “심지어 시멘트로 바른 흔적까지 보인다”고 말했다.

비석 앞엔 관광객들이 소원을 빌며 던진 동전과 지폐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동북아의 피라미드’로 손꼽히는 장수왕릉(장군총)의 동북 사면은 무덤을 지지해 주는 호석(護石)이 하나 빠진 상태에서 급증하는 관광객의 발길에 짓밟혀 심하게 침하돼 있다.

장수왕릉보다 규모가 2배나 큰 태왕릉은 돌 틈새로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면서 무덤의 돌멩이들이 계속 무너져 내리고 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지 못한 고구려 유적들의 훼손은 더욱 심각하다. 랴오닝(遼寧) 성 랴오양(遼陽) 시 교외의 고구려 백암성(연주산성)은 인근 석회암 채석장이 100여 m 앞까지 파고들어 왔지만 중국 당국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지안·랴오양=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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