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도청 특별법·특검법 오십步백步싸움

  • 입력 2005년 8월 11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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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의 특별법과 야 4당의 특검법은 국가 범죄인 불법 감청(도청)의 결과물 공개라는 입법 목적에선 다를 바 없다. 어떤 내용을 공개할지 판단하는 주체만 다르다. 특별법은 민간 대표들에게 공개 결정권을 주자는 것이고, 특검법은 특별검사의 수사 발표를 통해 밝히자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쪽도 국민 기본권인 사생활과 통신비밀 보호에 대한 침해를 피할 수 없다. 두 법을 버무린다고 합헌(合憲)이 되는 것도 아니다.

보도를 통해 내용이 이미 드러난 ‘X파일’의 경우는 시민단체의 고발에 따라 검찰이 수사하게 됐다. 또 이를 계기로 밝혀진 국가정보원과 옛 국가안전기획부의 도청 범죄 자체에 대한 수사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모든 도청 테이프 내용의 공개가 당파적 이해득실에 따라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위헌 행위에 앞장서서는 안 된다.

도청에 따른 불법 정보라도 공개하자고 하면 당당하게 보이고, 헌법적 가치를 짓밟아서는 안 된다고 하면 무슨 약점이나 있어서 그러는 것처럼 비칠까봐 ‘눈치 싸움’을 하는 것은 민주 정치가 아니라 포퓰리즘 정치다. 대중에 영합하기 위해, 또는 정파적 이익을 위해 헌법을 무시하는 관행이 만연하면 선량한 국민이 언제 어떤 형태로 기본권을 침해당할지 모른다.

노무현 대통령과 여당은 “도청 테이프에 사회 정의를 위해 밝혀야 할 부분도 있다”고 하지만 당리당략과 포퓰리즘의 냄새가 짙다. 헌법을 수호해야 할 사람들이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며 헌법의 위기를 부채질한다면 이는 민주주의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과오로 남을 것이다. 진실 규명과 사회정의 실현에도 적법 절차는 엄격하게 지켜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법치(法治)가 무너지고 여론몰이와 인치(人治)가 득세하는 나라로 후퇴하게 된다. 모든 국민이 헌법과 이에 합치하는 법률에 따라 보호받지 못하는 나라는 반(反)민주 국가다. 헌법을 어기면서까지 특별법과 특검법을 강행 처리해서는 안 된다고 보는 주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분명히 말하거니와 우리는 특정 정파의 이해득실에는 관심이 없다.

당론에도 불구하고 두 법 모두에 반대하는 김용갑, 이승희 의원의 자세가 신선하다. 여야는 오십보백보의 싸움질을 중단하고 헌법에 합치하는 도청 테이프 처리 방안을 함께 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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