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박영숙/과거사에 함몰된 한국, 미래전략 있나

  • 입력 2005년 8월 11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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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남편과 독일인 시어머니, 노르웨이인 시아버지와 24년을 살았으며 주한 영국 및 호주 대사관의 공보실에서 20여 년을 근무하면서 나라의 크기와 그들의 ‘통’에 대한 생각이 형성됐다.

한국이 물난리 하나로, 혹은 불법 감청(도청) 사건 하나로 온 나라가 법석을 부리고 있을 때 큰 나라 사람들은 북쪽에선 강추위, 남쪽에선 살인적인 더위, 동쪽에선 태풍, 서쪽에선 지진에 관한 대책을 동시에 세우면서도 태연하게 지내는 것이다.

사실 통이라면 ‘생각의 스케일’을 뜻하지만 실은 ‘미래 준비’와도 통한다. 땅 큰 나라의 수장은 한 가지 일에만 함몰될 수 없으며 미래에 대한 긴 안목을 기르지 않으면 안 되도록 수백 년간 길들여졌다.

이 때문인지 미국 시카고에서 7월 27일∼8월 1일 개최된 세계미래회의 유엔미래포럼 등 미래 관련 회의에 참석했을 때 만난 사람들은 미래를 마치 현실처럼 논했다. 그래서 지금 도청 사건에만 온갖 신경이 곤두서 있는 듯한 한국에도 “우리에겐 과거뿐 아니라 미래도 있다”를 외치고 싶은 것이다.

농경사회의 권력은 종교에 있었고, 산업사회의 권력은 국가가 가졌고, 정보화사회의 힘은 기업이 가진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 산업사회와 정보화사회 중간쯤에 있고 이는 정부의 권력이 기업으로 이동하고 있는 시대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유는 의사소통과 효율성 때문인데, 국가 대 국가의 의사소통에 긴 시간이 걸리는 데 비해 다국적 기업은 수초 안에 기업 총수의 의지가 세계의 말단에까지 전달되는 의사전달 체계를 가지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5∼10년 후 펼쳐질 것으로 보이는 ‘의식기술(conscious technology)사회’다. 현재 칩이나 기계장치를 인체에 내장하는 것은 의료기기에 국한되지만 앞으로는 이들 기기가 인간 의식과 직접 연관되면서 개개인이 기기를 몸에 장착하고 다니게 된다고 한다.

이때 개인은 기기의 도움을 받아 선택 및 의사결정을 하면서 1인 결정구조를 갖는 1인 기업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이런 시대가 오면 기업이 가진 힘은 개개인에게로 이동한다고 한다. 정부나 기업이 이 시스템의 효율성을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도 지금 기업의 정체성과 관련된 혼란을 겪고 있는데 ‘삼성공화국’ ‘삼성제국’ 등의 말이 나오는 것이 한 징표다. 이는 핀란드의 노키아가 이미 10년 전에 겪은 일로 이제 노키아는 정부보다 국민의 사랑을 더 많이 받는 기업으로 정착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면 삼성제국이란 말 대신 ‘누구의 제국’이라는 용어가 나타날 것이라 한다. 마치 ‘빌 게이츠 제국’이라는 말이 나오듯이…. 미래는 누가 거부한다고 오지 않는 것이 아니다.

미래를 예측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도 빌 게이츠 제국에 버금가는 황우석 제국 혹은 제2의 황우석 제국을 세계에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서는 인재를 아끼는 문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세월이 변하고 가치관이 바뀌었다고 해서 지난날 무엇인가 만들어 보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 모두 단죄되는 ‘혁명의 문화’를 자꾸만 재현하면 살아남을 사람이 없게 된다. 인재를 보호하기 위한 ‘미래인재보호센터’라도 세워야 할 판이다. 한국의 미래전략은 인재밖에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과거사 정리도 필요하지만 국민 대다수가 미래문제엔 손을 놓고 과거에만 매달리는 쏠림 현상이 있는 것 같아 해본 얘기다. 미래포럼의 궁극적인 주제는 하나다. “다 함께 죽지 말고 같이 살자”는 거다. 변화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다.

우리도 이제 다른 나라처럼 국무총리실 산하에 가칭 국가미래전략청 또는 미래전략위원회를 세워 미래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와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박영숙 (사)세계미래회의한국대표·호주대사관 문화공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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