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人들이 마무리한 故윤중호 시인의 思母曲

  • 입력 2005년 8월 11일 03시 08분


코멘트
“형님 시에 입적(入寂)이니 상여니 하는 말들이 눈에 자주 띈다 싶었는데, 그만 암에 걸렸다더군요. 마흔아홉이면 시를 써도 한참 더 쓸 나이인데. 시집을 받아보니 하나하나 절창인데, 노래 부른 사람은 눈에 뵈지 않으니. 가슴이 텅 빈 듯하지요.”

시인 양문규 씨가 지난해 9월 3일 세상을 떠난 선배 시인 윤중호(사진)의 유고 시집 ‘고향 길’(문학과 지성사)이 최근 나온 뒤 독백처럼 한 말이다. 윤 시인은 지난해 12월로 칠순을 맞는 어머니에게 드리기 위해 이 시집을 마무리하다 어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문학과지성사 김수영 주간은 “윤 시인의 친구인 김용항(온누리출판사 사장) 씨가 유작들을 갖고 왔고, 대학 선배인 채진홍 씨가 책임 교정을 봤다”고 말했다. 대학 은사인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우리 모두 돌아가야 할 길’이라는 제목의 발문을 썼다.

시집 ‘고향 길’은 윤 시인이 어릴 적 아버지가 집을 나가는 바람에 홀로 자식들을 키워야 했던 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연민을 그려낸 사모곡(思母曲)이다.

그 어머니와 식구들이 한때 오순도순 모여 살았으나 차츰 떠나야만 했던 고향 충북 영동군 심천면 송호리의 옛 풍경과 살가운 얼굴들을 통해 결국 자연으로 돌아갈 우리 삶의 아름다운 원형을 그려냈다.

윤 시인은 서울에서 살았지만 여동생은 비구니가 되어 경북 청도군 운문사에서 수행했는데 이 시집에는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20년 전, 말없이 출가한 딸을 찾으려고 낯선 이곳을 찾아온 늙은 에미가 있었다./지독한 차멀미를 해가며, 허방 짚듯, 겨우겨우 구름 문턱을 넘었지만, 그 전날 밤 꿈에서 에미를 미리 본 딸은 행장을 꾸려, 빈 절간 새벽바람처럼 떠났다고 했다./온 삭신이 무너내린 그 늙은 에미가, 몇 달 새 말라버린 눈물이 다시 터진 것은 대웅전 앞에 핀 불두화를 보고 나서였다.’(‘불두화’ 일부)

20일 오후 3시 반 충북 영동군의 여성문화회관에서 윤 시인의 1주기 추모 문학제가 열린다. 02-335-2743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