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군인 이순신’…그는 정말 전사했나

  • 입력 2005년 8월 10일 16시 24분


코멘트
KBS 1TV '불멸의 이순신' 동아일보 자료사진
KBS 1TV '불멸의 이순신'
동아일보 자료사진
‘이순신 장군은 적탄에 맞아 순국하지 않았다?’

KBS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막바지(8월28일 종영)에 접어든 가운데 이순신 장군의 죽음과 관련된 오래된 논쟁이 인터넷에서 다시 불붙고 있다.

이순신 죽음의 미스테리는 크게 ‘자살설’과 ‘은둔설’로 나뉜다.

이런 가설은 이순신이 전장에서 죽지 않았다면, 선조가 공이 많은 그를 시기해 역적으로 몰아서 죽이거나 또 그와 친한 주위 사람들도 함께 고초를 겪었으리라는 예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순신은 스스로 죽음을 택했거나, 또는 죽음을 위장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논쟁의 주요 골자.

◇‘이순신은 자살했다’=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 당시 죽기 위해 일부러 갑옷을 입지 않고 삼도수군통제사의 붉은 융복만을 입은 채 함대의 선두에 서서 지휘했다는 것이 ‘자살설’의 주요 골자.

KBS 1TV '불멸의 이순신'
동아일보 자료사진

당대 문장가인 금산군 이성윤(1570~1620)이 경남 남해군 충렬사에 써 붙인 시에는 “공로 커도 상 못 탈 것 미리 알고서 제 몸 던져 충성 뵈러 결심했던가”라는 내용이 있다.

이민서(1633~1688, 대제학·이조·예조·호조)도 자신의 저서 ‘김덕령 장군전기(金忠壯公遺事)’에서 “김 장군이 (역모설에 휘말려 억울하게) 죽은 뒤로 모든 장수들이 제 몸 보전하기도 어려울 것으로 의심해, 곽재우는 군사를 해산하고 생식하면서 화를 피했고, 이순신은 한참 싸울 적에 갑옷을 벗고 스스로 적탄에 맞아 죽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처럼 자살설을 옹호하는 측은 △이순신이 마지막 해전에서 전사한 점 △갑옷을 벗고 전장에 나갔다는 점 △감옥에 갈 때 한성에 도착해(1597년 3월4일) 어떤 이가 위로하니, “죽고 사는 것은 천명이다. 죽게 되면 죽는 것”이라고 하는 등 죽음에 대해선 초월한 사람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이순신은 죽지 않고 은둔했다’=이순신 장군이 살아 있으면서 전사한 시늉을 하고 16년간 초야에 묻혀 숨어 지냈다는 것이 ‘은둔설’.

은둔설을 뒷받침하는 사료는 이순신의 조카 이분(李芬)이 쓴 ‘행장’(行狀·죽은 이의 일생을 기록한 글)이다.

행장에 따르면, 이순신은 1598년 11월19일 노량 앞바다에서 맏아들 회(32)와 조카 완(20) 그리고 몸종 금이 단 세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전사한다. 전투가 끝난 후 그의 시신은 고향인 충남 아산으로 옮겨지지만 장례식은 죽은 지 80일 만인 다음해 2월11일 치러진다. 그리고 기이하게도 장군의 시신은 전사한 지 16년이 지난 1614년에 600m 떨어진 곳으로 이장된다.

KBS 1TV '불멸의 이순신'
동아일보 자료사진

‘은둔설’을 주장하는 측은 △한 번도 전쟁에 참여시키지 않았던 아들과 조카를 노량해전에 데려간 것 △그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이 아들, 조카, 몸종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점 △그리고 국장으로 치러진 장례임에도 불구하고 16년 뒤 다른 곳으로 이장됐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역사연구가 남천우 씨도 저서 ‘유물의 재발견’에서 “16년이 지난 1614년에 비로소 이순신이 죽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장례를 다시 한 것”이라며 “이분(李芬)은 어쩌면 자신의 기록을 통해 이순신이 실제로는 일흔 살까지 살았음이 밝혀지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전사설’이 정설이다.

행장 이외의 사료들(유성룡의 ‘징비록’, ‘선조실록’, 안방준의 ‘노량기사’)에 의하면 관음포 앞바다에서 적탄에 맞아 전사했으며 가족 외에도 부하 송희립 등이 죽음의 순간 함께 있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어 기존의 ‘전사설’을 뒤집기에는 역부족.

더구나 이순신의 인품과 행적에 비추어 볼 때 죽음을 회피하기 위해 전사를 가장하거나 은둔한다는 것은 폄훼적인 해석일 수도 있다.

소설 ‘불멸의 이순신’의 저자 김탁환 한남대 교수는 “역사적으로 따지면 전사가 옳겠지만, 그 죽음을 문학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는 차이가 있다”며 “대중은 개혁성과 리더십을 함께 지닌, 우리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영웅이 무슨 심정으로 그렇게 허무하게 갔는가에 주목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무패신화, 백의종군, 마지막 전투에서 돌연 전사… 이순신의 극적인 생애와 그에 대한 동경이 4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논란을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대중은 이순신 장군의 ‘불멸’에 더욱 무게를 두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