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유럽일주/0627~0702]2,000m 산을 자전거로 오르다

  • 입력 2005년 8월 10일 13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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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7일 : Interlaken-Urichen : 87km

며칠 전 번지점프를 하면서 자전거로 여행하는 한국인 친구 두 명을 만났다. 무척 반갑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워낙 늦은 시간에 일정도 서로 달라 아쉬움을 접고 헤어졌었다. 자전거로 유럽을 여행하는 한국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가 않아 특히나 아쉬움이 크다.

융프라우 관광을 마지막으로 인터라켄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이제 이탈리아로 향해 갈 차례. 북부에 비해 스위스 남부에는 2,000m가 넘는 산이 즐비하다. 아직 스위스에서 높은 산을 만난 적이 거의 없어 충만한 자신감을 가지고 출발.

날씨도 좋고 특히나 스위스 남부의 경치는 무척 아름다워 자전거 타기가 즐겁다.

한참을 가고 있는 상황, 저 앞에 동양인 같은 자전거 여행족 두 명이 있다. 우릴 보며 뭐가 그리 재미난지 싱글벙글 웃고 있다. 설마하며 다가가자 역시나 며칠 전 번지점프를 하며 만난 두 명의 한국인 친구들이다. 이렇게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만나니 신기하기도 하고 더욱 반가움이 크다.

두 친구의 이름은 김진현(24), 이정환(24).

대구가 고향인 두 친구는 올해 군복무를 마치고 서울에서 3개월 정도 밤, 낮으로 일을 하며 여행경비를 마련했다고 한다. 힘들게 일을 해 여행경비를 마련하고 스스로에게 도전이 될만한 여행을 하고 있는 상황이 비슷해서인지 반가움이 더욱 크다.

마침 이탈리아 밀라노까지 일정이 같아 며칠간 같이 여행을 하기로 결정.

당분간 식구가 다섯으로 늘었다. 숫자가 늘어난 만큼 마음이 무척 든든하다.

이곳 스위스를 빠져나가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2,000m가 넘는 산을 넘어야 한다. 하기야 애초에 스위스에 들어오면서 한번쯤은 넘을 것을 각오했기 때문에 더욱 힘차게 자전거 패달을 밟는다.

평속 20km가 넘던 속도가 10km 밑으로 떨어지며 어느덧 만년설이 가득한 산속을 오르고 있다. 지금껏 유럽에서 만났던 산들을 생각하며 크게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한 바가지 땀을 흘리며 2시간 정도 오르자 문득 정상이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이게 웬걸. 이제 고작 1/3정도 올라왔다. 정상을 기대하고 올라와서인지 가뜩이나 힘든 상황이 더욱 힘들어진다.

스위스 남부의 경치는 무척 아름다웠을 것이다. 아마도 차를 타고 올라갔더라면.

쥐가 날 듯 패달을 밟고 숨쉬기도 힘든 이 곳을 올라오며 아름다운 경치는 생각할 겨를도 없다. 고도차가 심해 물통이 빵빵해지며 기온이 뚝 떨어진다. 생각해보니 우리나라엔 있지도 않은 2,000m 산을 자전거로 올라가는 중이다. 그나마 다섯이나 있었기에 서로 응원을 하며 올라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내리는 비까지 맞으며 힘들게 올라간 정상.

여기서 바라보는 것이 바로 진짜 스위스다. 정상에 있는 호수엔 아직도 빙하가 가득하다.

우리가 올라온 길을 바라보니 무척이나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일단 포기하지 않고 이를 악물고 올라왔기에.

이렇게 힘들게 올라온 정상은 이제 우리에게 엄청난 내리막을 내어준다.

힘들게 올라온 만큼 그 대가는 무척 달콤하다.

밤 10시가 다 되어 들어간 캠핑장에서 우리 셋, 그리고 진현이와 정환이는 오늘의 만남을 자축하는 맥주파티를 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다는 스위스의 산을 정복했다는 기쁨 때문에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가 끝날 줄 모른다.

6월29일 : Mergozo- Lido Italia camping : 50km

밤새 후덥지근한 날씨 덕에 깊은 잠에 들지 못했다. 바로 붙어 있으면서도 이렇게 기후차이를 보이는 게 무척 신기하고 재미있다. 왠지 이런 날씨가 약간은 느끼하고 정열적인 이탈리아 사람들을 만든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원래 오늘은 밀라노를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난 이틀 동안 10시가 넘도록 자전거를 탔기에 밀린 빨래와 일기도 정리할 겸 밀라노 입성을 내일로 미뤘다.

2일 동안 같이 여행한 진현이와 정환이도 같이 이동했으면 좋았겠지만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기에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되었다. 늘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지만 유난히 이번은 이별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성공적이고 멋진 여행이 되길 서로 바래주며 악수를 나누는데 눈물이 찔끔한다.

50일이 넘도록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져봤지만 같은 민족이란 사실 때문인지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하기야 언제까지 같이 할 수도 없는 것이고 이 놈의 약한 마음을 강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

6월30일 : Lido Italia camping- Milano : 83km

전날 우박까지 동반한 비가 내리더니 날씨가 무척 선선하다.

어제 저녁, 맥주를 마시며 서로에게 서운했던 점들을 이야기했다. 오래 전부터 친구였기에 특별히 어려운 점이 없을 줄 알았는데 여행 내내 24시간을 붙어 다니며 생활 하다 보니 자연스레 서로에게 불만과 서운함이 쌓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굳이 혈액형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둘 다 악명 높은 B형인 원제와 나는 자기주장이 무척 강한 편이다. 서로를 이해한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자기주장이 강한 성격이다 보니 자주 부딪히게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A형인 동원이는 중간에서 합의를 찾느라 나름대로 스트레스가 많았었나보다. 그래도 친구이기에 이렇게라도 서로에게 서운함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 여행 직전에 만나 같이 여행을 하는 사람들 중엔 그런 불만조차 이야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니 우리는 그나마 다행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결국은 조금씩 양보하는 것뿐.

속 시원히 해결점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나니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시원해진다.

2시쯤 도착한 밀라노.

벌써부터 휴가철이 시작됐는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도심 가득하다. 한국여행객 역시.

유스호스텔에 짐을 풀고 해가지기 시작하는 느지막한 시간에 도심에 나가본다.

이탈리아에 들어오며 늘 경계하는 것이지만 조심이 지나친 것인지 괜히 허름한 사람들은 모두 도둑 같다. 그들에게 미안한 소리지만.

400년이 넘은 시간에 걸쳐 완성된 고딕양식의 밀라노 두오모. 그 높이와 크기가 장난이 아니다. 지금껏 많은 성당을 봐왔지만 각각의 특징과 나름의 멋이 있으니 어느 것이 더 멋지다고 쉽게 이야기할 수가 없다.

한쪽 구석에서 흘러나오는 정열적인 이탈리아 음악과 밀라노의 야경이 어우러지니 그 자체가 무척 즐겁다.

피자로 유명한 밀라노에 와서 피자를 먹지 않을 수 없는 법.

하지만 그 동안 값싼 음식에 길들여져 버린 우리 입맛에 뭔가 모르게 부족하다. 맛을 떠나 그냥 배만 부르면 만족해하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로마나 다른 곳에 비해 그렇게 볼 것이 많지는 않지만 유리 너머에 있는 명품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쳐다보는 것 또한 밀라노가 주는 즐거움이다.

이제 슬슬 살아있는 박물관 이탈리아 남부로 향해본다.

7월1일 :Milano-Lodi : 55km

벌써 7월이다. 이곳 유럽에 온지 50일이 넘었으니 이제 여행의 반이 넘은 샘이다.

오랜만에 유스호스텔 침대에서 잤건만 더위와 모기 때문에 7시도 되지 않은 시간에 눈이 떠진다. 유스호스텔에서 제공되는 부실한 아침(빵과 우유)를 먹고 밀라노 시내로 출발했다.

시내에서 더 이상 불필요해진 짐도 한국으로 보내야 하고 이탈리아 지도도 구입해야 하고 또 자전거도 수리를 해야 하니 할 일이 꽤 많다.

먼저 우체국에서 그 동안 정들었던 짐을 보냈다. 정이야 들긴 했지만 그 무게 때문에 자전거 고장의 첫 번째 이유이기도 했으니 속이 후련하다. 포켓 트럼펫을 비롯해 긴팔 옷, 지도 등 한 상자 가득이다. 언젠가 여행가 한비야 씨가 말하길 여행의 짐을 챙길 때 망설여지는 것들은 과감히 빼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우리가 돌려보내는 대부분의 짐이 출발하며 무척 망설였던 것들이니 진작 말을 듣질 않은 것이 후회가 된다.

우리에게 없는 이탈리아 지도도 사고 자전거도 대충 수리를 하고 나니 3시가 넘는다.

어차피 멀리 가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기에 밀라노 외곽에 있는 캠핑장에 들어가기로 했다.

자전거로 30분도 안 걸리는 거리이기에 온갖 여유를 부리며 천천히 갔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할 줄이야.

지도상에 분명히 표시된 캠핑장이 도통 보이질 않는다.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다들 여기에 캠핑장이 있냐고 되묻는다. 무척 당황스럽다. 다음 캠핑장은 100km정도를 더 가야 하는데.

일단 되는데 까지 가기로 하고 자전거를 타지만 한없이 갈수도 없고 다들 금방 지쳐버린다.

고심 끝에 노숙을 하기로 결정, 이곳저곳 농가를 기웃거리기로 했다.

중부유럽과 다르게 여기 이탈리아의 집들은 그렇게 예쁘지도, 깨끗하지도 않아 솔직히 부탁하는 입장에서도 그렇게 부담스럽지가 않다. 넓은 들판에 집이라 해봐야 한두 채 정도 있으니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도 않다.

들판을 따라 조금 들어가니 집이 한 채 나온다. 집이라기보다 젖소가 가득한 축사에 가깝다. 통하지도 않는 말로 대충 우리의 사정을 설명하고 흔쾌히 허락을 받아낸다. 하기야 이렇게 넓은 곳에 텐트하나 치는 것이 분명히 어려운 부탁은 아닐 것이다.

덤으로 시원한 수박까지 얻어먹으니 캠핑요금도 아끼고 일석이조다.

넓은 들판에서 탁 트인 밤하늘을 바라보니 무척 아름답다.

어제 산 모기향까지 피워놓으니 마치 우리나라 같다. 밤하늘에 가득한 별을 보니 내일도 오늘처럼 더운 날씨일 것 같다.

7월2일 : Lodi - Parma : 114km

어제 젖소가 가득한 농가에서 잠을 잤건만 오늘은 말이 가득한 농가에서 또 하루를 자게 됐다. 오늘은 지도에 표시된 캠징장을 찾긴 했지만 카라반(캠핑장)만 이용할 수 있다고 하니 또 어쩔 수 없는 노숙을 하게 되었다. 뭐 이틀 치 숙박비를 아껴서 좋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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