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살려야 한국축구 산다]<上>방만한 운영

  • 입력 2005년 8월 10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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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와 스페인은 왜 축구 강국일까? 세계 최고의 프리미어리그와 프리메라리가가 있기 때문. 같은 이유로 한국은 K리그를 살리지 않고는 영원히 축구 후진국을 면할 수 없다. 프로 구단과 연맹의 방만한 운영이 만성 적자와 리그의 질 저하를 부르고 결국은 한국 축구의 수준 하락으로 이어져 온 악순환의 고리. 언제까지 4년 주기로 월드컵 때만 되면 16강 타령을 반복해야 하나. 2002년 4강 신화 이후 흔들리는 한국 축구의 문제점과 발전 방향에 대해 3회에 걸쳐 짚어 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100억 원이면 공장을 하나 지을 수 있는 돈인데 부천 SK는 매년 100억 원을 쓰면서 적자만 내느냐. 이런 상태라면 해체하라”고 지시했다. 더 이상 ‘돈 먹는 하마’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부천 SK는 현재 서울대와 세종대에 외주 용역을 맡겨 ‘축구단 존립 타당성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출범 23년째를 맞았지만 13개(상무 포함) 프로 구단은 많게는 연간 150억 원에 이르는 적자를 보고 있다. 당연히 흑자를 내는 구단은 하나도 없다.

○ 한해 80억∼250억 쓰면서 자생노력 안해

프로축구단 부실 운영의 핵심은 축구가 기업에 ‘기생’하는 구조라는 데 있다. 기업은 축구단을 홍보의 도구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축구단을 내실 있게 운영해 흑자를 낼 생각보다는 돈을 얼마든지 써서라도 좋은 선수를 확보해 ‘홍보’만 하면 된다고 본다. 대기업 소속 구단과 종교단체 구단이 1년에 150억∼250억 원을 물 쓰듯 쓰는 이유다. 80억 원에서 100억 원을 쓰는 시민 구단들은 자생력을 키우려는 노력을 하지만 일부 대기업 소속 구단은 이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연맹 규정까지 어겨가며 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어차피 나오는 돈, 홍보만 잘하면 된다는 식이다.

○ 연맹규정 어겨가며 스타선수 잡기에 골몰

올해 새로 적용된 신인등록 규정에 따르면 K리그 신인 선수는 계약기간 3년일 경우 계약금 없이 연봉 5000만 원을 넘을 수 없다. 그러나 올해 신인 최대어인 ‘축구천재’ 박주영(FC 서울)은 20억∼30억 원을 받았다는 게 타 구단은 물론 연맹 측의 설명. FC서울은 “연봉 5000만 원 외에 한 푼도 안 줬다”고 말한다. CF 등 광고로 보전했을 뿐이라는 설명. 그렇다면 ‘이면 계약’을 했다는 얘기. ‘제2의 박주영’이 나올 경우 똑같은 현상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구단은 출전 수당을 3000만 원에서 5000만 원까지 파격적으로 주고 있다는 말도 있다. 해당 구단은 “40경기를 뛰면 20억 원인데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고 펄펄 뛰지만 그만큼 규정을 요리조리 피하는 각종 편법이 횡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심지어 딴 구단에서 잘 키워 놓으면 “우리 팀에 오면 1억∼2억 원은 더 줄게”라고 부추겨 빼내 오는 것도 다반사다. 이런 와중에 실력 없는 선수들도 수억 원씩 챙기는 ‘거품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니 축구의 질은 더욱 떨어지고 팬들의 외면은 심해지고 있다.

고교와 대학 재학생에 대한 입도선매도 비일비재하다. 다른 구단보다 먼저 좋은 선수를 확보하기 위해 검은돈이 오가고 있다. 해당 학교에는 잔디 구장을 지어 주기도 한다. 이렇다 보니 아마추어 감독들은 프로팀에 공공연하게 돈을 요구하고 있다. 이 모두가 성적 지상주의에 목맨 구단들이 규정을 지키지 않아서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이용수(KBS 해설위원) 세종대 교수는 “축구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은 없고 축구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만 있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구단, 스포츠중계 홍보효과 과대평가”▼

“국내 스포츠 구단들은 홍보 효과를 실제보다 과장해서 인식하고 있다.”

서울대 체육교육학과 강준호(스포츠경영학·사진) 교수는 “TV광고와 스포츠 중계의 홍보 효과는 질적으로 다른데 구단들은 이를 무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시청자나 독자의 이목을 사로잡기 위해 만든 광고와 물 흐르듯 지나가는 TV중계의 효과가 같을 수 없다는 것. 강 교수는 “팬들은 TV중계를 보더라도 선수에게나 관심을 가지지 소속이나 유니폼에 적힌 광고문구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스포츠 중계의 홍보 효과를 TV광고의 50% 정도로 깎아서 평가하고 있다. 결국 국내 프로 구단들은 노출 시간을 가지고 홍보 효과를 평가하지만 이는 실제보다 2배 이상 과장돼 있다는 것이다.

또 선진국에서는 소비자들을 직접 조사해 프로 스포츠 구단이 얼마만큼 또 어떻게 신뢰도를 형성하는지 체계적으로 조사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비용 분석을 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하지만 국내 구단들은 이러한 체계적인 노력은 없이 어떻게든 돈을 쏟아 부어 성적만 잘 나오면 된다는 ‘성적 지상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

프로 스포츠도 결국은 비즈니스인데 비용과 효용을 비교하면서 그 안에서 수익을 만들려는 노력은 하지도 않고 ‘성적’만 가지고 압력을 넣으니까 프로구단이 실제는 효과도 내지 못하고 ‘돈 먹는 하마’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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