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어디서부터 잘못됐나]정권 바뀌면 점령군이 접수

  • 입력 2005년 8월 10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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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최고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이 도청 파문으로 흔들리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국정원 개혁과 개편론이 난무하고 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도 8일 기자간담회에서 국정원의 조직과 역할을 정비할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이에 따라 국정원 조직과 기능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이 예고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같은 단순한 외과적 접근은 문제의 본질을 간과한 근시안적인 처방이라는 지적이 많다.

▽문제는 자르기, 편 가르기, 줄대기=여권의 한 관계자는 9일 “김영삼(金泳三) 정부 이후 국정원(당시 국가안전기획부)은 인사(人事) 때문에 복마전이 됐다”고 말했다. 당시 안기부 인사가 YS의 차남 현철(賢哲) 씨 등 몇몇 권력 실세들에 의해 좌우되면서 이들에 대한 충성 경쟁과 줄 대기가 시작됐다는 것.

국정원은 1961년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지원 아래 중앙정보부로 출발한 이후 그동안 27명(김승규·金昇圭 현 원장 포함)의 조직 수장이 임명됐다. 그러나 내부 승진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권력에 의한 ‘낙하산’ 인사가 당연시됐던 것.

이렇게 임명된 수장들은 대부분 정권 실세의 사적인 정보기관장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국정원 안팎의 시각이다. 이에 따라 내부 직원 인사도 개개인의 능력이 아닌 출신 지역이나 실세에 대한 충성도에 따라 이뤄진 경우가 많았다.

내부적으로 곪던 파행 인사 문제가 밖으로 터져 나온 것은 김대중(金大中) 정부 초기. 50년 만의 정권 교체의 여파가 국정원에도 그대로 몰아닥쳤다. 특정 지역 출신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이뤄지고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능력이나 평가와는 무관하게 권력 실세와 친한 또 다른 지역 출신들이 대거 중용되면서 조직이 요동쳤다.

이번 안기부 도청 테이프 유출 사건의 중심에도 당시 직권 면직된 직원들이 있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요직을 장악한 외부 인사들의 조직 흔들기가 계속됐다.

또 다른 국정원 관계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을 앞세운 ‘사람 자르기’와 ‘조직 뜯어 붙이기’가 반복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국가와 국민에 대한 충성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고질화된 신분 불안=국정원직원법상 국정원장은 직원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다. 임면권뿐 아니라 1급 직원을 제외한 직원의 전보나 휴직 복직도 모두 원장 마음대로 할 수 있다. 특히 직권면직 조항(제21조)을 보면 ‘근무태도 불량, 직무수행 능력 부족’ 등 모호한 기준으로도 얼마든지 내보낼 수 있도록 돼 있다.

또 직제나 정원 개폐, 예산 감소 등을 이유로 오랫동안 특정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은 요원들을 한순간에 그만두게 할 수도 있다.

그나마 살아남은 직원들은 군인처럼 ‘계급정년’에 시달려야 한다.

이 같은 규정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대파’나 ‘비주류’ 직원들을 숙청하는 데 이용된다. 이로 인해 국정원은 원장과 권력자에게 충성하는 직원들만 요직을 차지하게 돼 결국 ‘정권의 사조직’처럼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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