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60년]문화 키워드로 본 1945∼2005년

  • 입력 2005년 8월 10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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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에서 세계를 향한 문화 발신 기지로 변신해 온 대한민국. 60년의 다난한 역사 속에 환희와 좌절, 억압과 자유, 궁핍과 풍요를 거치면서 우리는 시대를 노래하고 시대의 공기와 함께 춤추었으며 시대의 기류 속에 청춘을 열고 묻었다. 각 시대를 상징하는 문화 키워드를 조명한다.》

▼1940년대▼

# 신라의 달밤 일제 통치의 종식은 새로운 얼굴들을 고국으로 불러들였고 스타로 탄생시켰다. 일본에서 음대를 졸업하고 징용을 피해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던 가수 현인도 그중 1명이었다. 1946년 귀국한 그가 작곡가 박시춘을 만나 취입한 ‘신라의 달밤’은 이국적인 분위기와 떠는 듯한 독특한 창법으로 대히트를 기록했다.

# 검사와 여선생 1940년대를 넘어 50년대 초반까지 무성영화의 전성시대가 이어졌다. 1948년 제작된 윤대룡 감독의 ‘검사와 여선생’은 당시 10대였던 ‘마지막 변사’ 신출 씨 등 당대의 명변사들이 충분히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다양한 감정의 기복이 표현된 영화였으며 사법고시의 인기를 한껏 올리는 부수 작용까지 낳았다.

▼1950년대▼

# 잉여인간 인간이 ‘남아도는’ 존재로 취급받을 수 있을까. 1958년 발표된 손창섭의 단편소설 ‘잉여인간’은 선량하면서도 현실에서 제대로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주인공들을 등장시켜 전후 사회의 각박함과 물신화를 고발했다. 작가는 1960년대 초 절필해 결국 처절히 1950년대를 살고 기록한 작가로 문단사에 남았다.

# 명동, 다방과 살롱 전후의 폐허 속에서 문인과 예술가들은 다방과 살롱으로 모여들었다. ‘모나리자’ ‘동방싸롱’ 등이 당대를 풍미한 명소들이었다. ‘명동백작’으로 불렸던 소설가 이봉구는 1960년대 초 ‘우리들의 명동이 막을 내림과 동시에 명동을 떠난다’라는 말을 남기고 명동시대를 접었다.

▼1960년대▼

# 서울 1964년 겨울 ‘나’는 선술집에서 ‘안’이라는 사내를 만난다. 시시한 대화 끝에 밤을 같이 지내기로 했는데 오늘 아내가 죽었다는 남자가 끼워 주기를 요청한다. 여관에서 남자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안 두 사람은 여관을 빠져나온다…. 현대에 동화되지도 못하고 전통에 미련도 없는 세대. 작가 김승옥이 그린 1960년대의 우울한 초상.

# 밤안개, 안개 나뭇가지가 툭툭 꺾이는 듯한 고독한 색소폰. 나직하게 깔리는 보컬. 1962년 ‘밤안개’와 함께 이봉조 현미 ‘콤비’의 전성기가 개막됐다. 눈부신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주변을 고요하게 감싸 줄 ‘안개’를 원했던 것일까. 이봉조는 1960년대가 끝나던 해 ‘안개’라는 새 노래를 선보였다.

▼1970년대▼

# 별들의 고향 경아, 남자들에게 잇달아 버림받고 끝내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눈 내리는 밤거리에서 삶을 마감하는 주인공. 최인호 원작의 소설을 이장호가 감독한 1974년작 ‘별들의 고향’이다. 이듬해에는 식모에서 창녀로 전락한 여성을 그린 ‘영자의 전성시대’가 대히트를 기록했다. 여성은 산업화 시대의 약자이자 희생자였다.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난쏘공)’은 산업화의 그늘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 아니 벌써 1977년도 저물어 가던 겨울, 개구쟁이 같은 얼굴의 3형제 록그룹 ‘산울림’의 등장은 유신 말기의 삼엄하던 사회 분위기를 느긋하게 간질였다. ‘밝은 날을 기다리는 정다운 눈길 거리에 찼네’라는 가사는 암울한 세태에 대한 반어(反語)였을까. 최소한 정권의 검열 담당자들은 기분 좋아했으니….

▼1980년대▼

# 태백산맥 좌익, 빨갱이, 적이라는 단순 구도의 반복 주입 속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이른바 386세대. 1983년 ‘현대문학’에 연재되기 시작한 이 장편소설이 그들에게 준 충격은 컸다. 해방공간의 시대적 대립을 ‘열강의 대리전’이 아닌 민족 내부의 계층 간 갈등으로 해석한 이 작품은 2000년대까지를 관통하는 스테디셀러로 기록되고 있다.

# 굿모닝 미스터 오웰 1984년 벽두. 온 국민의 관심 속에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작품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집집의 안방 문을 두드렸다. 시청자들은 필립 글래스의 미니멀리즘 음악, 존 케이지의 퍼포먼스 등 전위의 첨단을 달리는 아티스트들이 전해 주는 문화적 충격과 함께 조지 오웰이 ‘암울한 감시 사회’로 예견했던 1984년을 맞이했다.

▼1990년대▼

# 마광수와 장정일 1992년 연세대 마광수 교수가 소설 ‘즐거운 사라’의 음란성을 이유로 구속됐다. 유죄가 확정된 뒤 학교에서도 해직됐다. 1997년에는 소설가 장정일이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로 불구속 기소됐다. 표현의 자유가 정치적 영역을 넘어서기 시작한 1990년대. 달라진 가치관과 기존의 가치관이 충돌하며 낳은 파열음이었다.

# 방, 방, 방의 탄생 노래방, PC방, 전화방, 휴게방…. 1990년대는 수많은 ‘방’의 탄생을 목격했다. 풍요는 여흥을 불렀으되 그 공간은 단절되어야 했다. 어떤 차원에 있어서는 은밀하고 조심스러우며 감추고 싶었다. 인터넷 검색엔진에서 몇 가지의 ‘방’을 검색어로 쳐 보라. 십중팔구는 ‘성인 인증이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뜰 것이다.

▼2000년대▼

# 전지현과 이효리 관능의 코드로 시선을 열고 들어오는 요정들. 남자와 여자의 시선은 각기 다른 각도의 ‘소유욕’으로 그들에게 열광한다. 여성이라면 ‘복제해 가지고 싶다’는 탐닉의 시선으로. ‘섹시’는 이제 서구 사회와 동일하게 찬사의 어휘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문근영’은 여전히 어리고 싶지만, 대개의 소녀들은 일찍 여인이 되고 싶다.

# 셀프족의 탄생 ‘광장’에서 그들은 사진을 찍어댔다. 광장은 길게 열린 십자로를 지나 온 세상을 덮을 비트(Bit)의 사이버 세상으로 열린다. 이제 이 세상에 프로페셔널과 아마추어의, 생산자와 감상자의 구분은 없다. 댓글을 붙인 나는 다음번에 댓글의 대상이 될 것이다. 남의 것을 퍼담아 살짝 비틀기만 해도 내 것이 된다.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도움말 주신 분=정윤수 문화평론가, 권성우 문학평론가,강헌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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