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원형경기장서 야간에 열리는 ‘베로나 오페라축제’

  • 입력 2005년 8월 10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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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시대의 원형경기장이 그대로 공연장으로 활용되는 베로나 야외 오페라 극장. 최대 2만5000여 명이 관람하는 대형극장이지만 가수가 마이크 없이 노래를 불러도 전 객석에 고루 들리는 음향구조를 갖췄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로마 시대의 원형경기장이 그대로 공연장으로 활용되는 베로나 야외 오페라 극장. 최대 2만5000여 명이 관람하는 대형극장이지만 가수가 마이크 없이 노래를 불러도 전 객석에 고루 들리는 음향구조를 갖췄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6일(현지 시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무대로 유명한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 베로나. 유럽 각지에서 모여든 관광객들로 시끌벅적하던 골목과 광장들은 저녁 여덟시 반이 넘으면서 썰물 빠지듯 고요해졌다. 아홉 시, 비로소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 하늘 아래 1만5000여 명에 이르는 청중이 손에 촛불을 든 채 고대 로마의 원형경기장 유적에 모여 앉았다.

이탈리아 전통극의 광대 복장을 한 안내요원이 징을 두드리며 공연 임박을 알리자 청중은 일제히 손뼉을 두드리며 환호했다. 1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유럽 전역의 음악팬과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는 ‘베로나 아레나(원형경기장) 오페라 축제’가 이 날의 막을 올리려 하는 순간이었다.

○ 1만5000여 명의 관객 손에 촛불 들고 입장

세계 야외오페라의 원조격인 아레나 오페라축제는 1913년 당대의 명 테너 조반니 체나텔로가 베로나 시당국에 “로마시대의 유적인 경기장을 오페라극장으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내 현실화됐다. 처음 공연된 베르디 ‘아이다’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명성이 전 세계에 퍼져나갔고, 제1, 2차 세계대전 때 잠시 중단된 것을 제외하고는 매년 50회의 공연을 통해 연인원 80만여 명의 청중을 끌어들이고 있다.

베르디 ‘아이다’ 2막 개선 장면. 화려한 군무와 합창이 압권이다. 베로나=유윤종 기자

83회를 맞는 올해 축제의 프로그램은 이 축제의 원조격인 ‘아이다’를 비롯해 베르디 ‘나부코’와 푸치니 ‘보엠(라보엠)’ ‘투란도트’, 폰키엘리 ‘조콘다’ 등 다섯 작품으로 짜여졌다. 기자가 첫날(6일) 관람한 공연작은 파리의 2류 시인과 병약한 처녀의 절망적 사랑을 그린 ‘보엠’. 센티멘털한 서정극에 가까운 작품이어서 규모로 승부하는 야외 오페라에 맞을까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파리의 크리스마스 이브를 묘사한 2막이 오르자 의심은 탄성으로 바뀌었다. 화려한 의상의 파리지앵과 파리지엔으로 분장한 100여 명의 합창이 무대를 가득 채웠고, 풍선장수와 불 뿜는 광대, 목말 탄 광대가 무대를 이리저리 누비며 시선을 붙들었다. 화강암 질감의 백색 무대는 조명의 마술에 따라 수시로 색상을 바꾸었다. 차세대 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테너 마르첼로 알바레스의 노래도 좋았지만, 강건하면서도 경쾌한 질감의 음성을 선보인 마르첼로 역의 바리톤 마리우스 퀴샹은 단연 돋보였다.

다음 날인 7일은 명연출가 프랑코 제피렐리가 제작한 ‘아이다’ 무대. 황금색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객석을 압도하는 가운데 180여 명의 합창단이 이국의 병사와 노예, 무희로 등장하는 2막 개선 장면의 화려함은 극치를 달렸다. 주연급 성악가들이 눈에 띄는 열연을 보여 주지 못했지만, 왕과 사제 역 등 조연급의 열창이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 마이크 음향장치 없이 공연… 소음 전혀 없어

가장 불가사의한 것은 최대 2만5000명을 수용하는 이 거대한 야외극장에서 장내 안내방송을 제외하고는 일절 마이크와 음향 증폭장치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악가들의 노래는 난반사되거나 불분명한 느낌이 전혀 없이 또렷하게 전달됐다. 관현악과 합창단을 포함해 300여 명이 이루는 자연의 순수한 화음에 이 순간만큼은 베로나 전체가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것일까.

올해 6월 17일 막을 올린 베로나 오페라 축제는 8월 31일까지 계속된다. www.arena.it

베로나=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베로나’ 지휘자 다니엘 오렌▼

올해 베로나 야외 오페라 축제의 주인공은 단연 ‘아이다’ ‘보엠’ 공연을 이끈 이스라엘의 지휘자 다니엘 오렌(50·사진)이었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출연진과 객석을 압도한 그는 매번 막이 바뀔 때마다 “브라보 마에스트로”(지휘자 만세)라는 환호성을 이끌어냈다. 8일 오렌 씨의 숙소인 호텔 ‘두에 토리’에서 그를 만났다.

―야외 오페라를 지휘할 때와 실내 오페라 지휘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1984년부터 베로나 아레나 축제를 지휘해 오고 있습니다만, 이곳의 야외 공연에서는 가수도, 관현악도, 합창도 느리게 연주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무대가 커서 소리가 늦게 전달되니 그럴 수밖에요. 이 때문에 긴장을 유지할 수 있는 적정한 템포로 무대를 강력하게 끌어가는 데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독실한 유대교 신자인 그는 1994년 텔아비브에 새로 개관한 신 오페라극장에서 구약 성서에 바탕을 둔 오페라 ‘나부코’를 지휘, 공연을 대성공으로 이끌기도 했다.

―10월 한국에서도 국립오페라단 주최의 ‘나부코’를 지휘하실 예정입니다만, 유대인으로서 이스라엘 민족의 이집트 유배생활을 다룬 ‘나부코’를 지휘한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인 누구나 이 이야기에 동감합니다. 그러나 이탈리아인 베르디가 작곡한 이 작품은 이스라엘인의 처지만을 그린 것이 아닙니다. 고향을 잃고 떠도는 모든 인간에게 위안을 주는 메시지를 이 작품은 담고 있죠.”

베로나=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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