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할까? 말까?…‘분식회계 고해성사’ 기업들 고민

  • 입력 2005년 8월 10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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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여름. 재계가 바짝 움츠러들고 있다. 검찰의 ‘X파일’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고, 형제간 분란을 일으키고 있는 두산그룹에선 과거 ‘거짓장부’를 만든 사실을 먼저 공개하고 나섰다. 모두 기업 경영에는 적지 않은 타격을 미칠 수 있는 사건들이다. 특히 재계는 형제간 분쟁 와중에 불거진 두산산업개발의 과거 분식(粉飾)회계 고백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07년 본격적인 증권집단소송에 앞서 미리 대처하는 것이라고 두산 측은 설명한다. 하지만 재계로선 ‘남의 집 불구경’ 할 만큼 느긋한 처지만도 아니다. 재계 일각에선 ‘이참에 분식회계를 털고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지만 섣불리 자백했다간 ‘부메랑’으로 돌아올까 봐 내심 걱정이다.》

○ 연이은 과거 분식회계 고백

재계에선 과거 분식회계를 저지른 사실을 고백한 대한항공과 두산산업개발의 고백 배경을 놓고 말들이 많다.

2003년 말 회계장부를 꾸며 719억 원의 자산을 과다 계상(計上)했다고 밝힌 대한항공이나 1990년대 중반 매출액을 2797억 원 과다 계상했다고 고백한 두산산업개발은 표면상으론 ‘고백’ 형식을 띠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각각 금융감독원이나 검찰의 회계 감리나 수사를 받고 있던 절박한 상황이었다.

어차피 드러날 바에야 먼저 손을 들고 고백하면 정상을 참작해 줄 거라는 기대가 섞여 있을 법하다.

내년 말까지 스스로 분식회계 사실을 털어놓으면 증권집단소송 대상에서 벗어난다. 민형사상 책임 문제와는 별도로 일단 소액주주들의 집단소송 ‘소나기’에서 피할 수 있는 것.

○ 매출채권 분식 관행…초조한 건설업계

두산산업개발은 앞으로 발생할 예상 매출을 현재 매출로 앞당기는 방법으로 매출액 2797억 원을 부풀렸다.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예를 들어 800억 원에 수주한 공사를 1000억 원을 들여 끝내 200억 원의 손실을 봤다고 할 때 이를 손실로 처리하지 않고 진행 중인 다른 공사의 원가로 떠넘긴 것.

이런 분식회계는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건설업계에 널리 퍼진 관행이었다.

당시 은행 금리는 폭등했지만 건설업체들의 공사 단가는 큰 변동이 없었다. 하지만 건설업은 침체돼 수주 물량이 크게 줄어 거액의 적자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많은 업체들이 분식을 통해 ‘장부상 흑자’를 만들어 이 시기를 넘겼다.

한 대형 건설업체 관계자는 “당시 매출이 적고 적자를 낸 것으로 공시되면 주가가 폭락하고 은행에서 자금을 빌리기도 어려워 분식회계가 불가피했다”고 털어놨다.

○ 다른 기업들도 고백할까

분식회계 자진 신고가 다른 기업으로 확산될지는 불투명하다.

SK글로벌 사태로 검찰 수사를 받은 SK그룹은 “먼지 하나 없이 다 털렸다”고 밝혔다. 역시 검찰 수사를 받은 한화그룹도 “우리는 무풍(無風)지대”라고 강조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과거 정치권 입김이 거센 관치경제의 그늘 아래서 장부를 부풀리면서 분식을 해 온 사례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산 규모가 큰 대기업일수록 분식 규모도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할 뿐 해당 기업이 나서 고백하지 않으면 밝혀낼 도리가 없다.

A기업 재무팀 관계자는 “고백 이후가 오히려 더 큰 문제”라며 “주가가 폭락하고 금융시장이 요동을 치면 해당 기업은 검찰 수사 이전에 엄청난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걱정했다. B기업의 한 임원도 “먼저 나서 매 맞는 게 꼭 유리한 것만도 아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재계 일각에선 내년 말까지 시한인 ‘고해성사’ 기간에 계속 눈치를 보겠다는 분위기다.

금융감독위원회 고위 관계자도 “자진 고백을 하더라도 민형사상 책임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총수가 대승적 차원에서 결단을 내리지 않고서는 쉽사리 ‘자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계 관계자는 “무엇보다 시장의 반응이 중요하다”면서 “정부 당국에서 아무리 보호막을 쳐준다고 해도 시장에서 요동을 치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후유증이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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