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묻지마 도청’ “DJ정부 시절 청와대도 도청”

  • 입력 2005년 8월 9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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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청와대 구내전화까지 수시로 불법 감청(도청)을 했으며, 현 정부의 초대 국정원장인 고영구(高泳耉) 전 원장도 DJ 정부 시절 국정원의 조직적 도청 사실을 알았을 것이라는 주장이 8일 나왔다.

DJ 정부 당시 국정원의 국내 정치 정보 수집 과정에 관여했던 한 관계자는 이날 “국정원 과학보안국의 도청 대상에서 청와대 구내전화도 예외가 아니었다”며 “특히 사정(司正)과 인사(人事)를 다루는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집중적인 도청 대상이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당시 국정원 고위간부의 지시에 따라 대통령의 친인척과 측근의 비리를 감시한다는 명목으로 청와대 전화를 도청했고, 그 과정에서 김 전 대통령이 이들과 통화하는 육성이 포착된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대표적인 예로 김 전 대통령과 이희호(李姬鎬) 여사가 미국에 머물고 있던 3남 홍걸(弘傑) 씨와 국제전화로 통화한 내용이 청와대 전화를 도청하는 과정에서 상세히 파악된 적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 관계자는 국정원이 청와대 전화를 도청한 이유에 대해 “대개 대통령의 친인척이나 실세 측근에 관해 좋지 않은 정보를 청와대에 올렸을 때 청와대 쪽 반응이 어떤지를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대통령 친인척이나 측근에 대한 부정적인 보고를 올린 경우 자칫하면 ‘국정원이 음해하고 있다’는 역공을 받을 수 있어 미리 청와대의 분위기를 감지해 대비하려 했다는 것. 이는 국정원의 도청이 경우에 따라서는 국정원과 청와대 및 실세 측근들 간의 내부 권력투쟁에 활용됐음을 의미한다.

한편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이날 “2003년 4월부터 올해 6월까지 2년 여간 재직한 고 전 원장이 DJ 정부 시절 국정원의 조직적 도청 사실을 알았다는 정황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법조인이자 재야 인권운동을 했던 고 전 원장이 이를 알고 난 뒤 얼마나 착잡했겠느냐”면서 “그러나 고 전 원장도 이를 공개할 기회를 놓쳤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본보는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이날 고 전 원장의 자택과 사무실 등으로 여러 차례 연락했으나 고 전 원장과 통화하지 못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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