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통신비밀法, 도감청 남발 못하게 고치라

  • 입력 2005년 8월 9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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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 X파일’ 보도로 비롯된 정보기관의 도청 파문은 그 뿌리가 통신비밀보호법의 허점에도 있다는 것이 전 국가정보원 과학보안국장의 얘기다. 12년 전에 제정된 이 법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보완됐다. 하지만 아직도 통신의 비밀을 지켜 주고,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에는 거리가 멀고, 권력 측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정치 사찰을 위한 도청 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통신비밀보호법은 법명 그대로 개개인의 통신비밀을 보호하고 통신의 자유를 뒷받침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통신 및 대화의 비밀을 제한할 때는 법원의 영장을 받도록 하는 등 엄격하게 법적 절차를 거치도록 돼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정보기관의 ‘편의주의’에 따라 멋대로 도청을 해도 누구도 제동을 걸 수 없는 허점을 안고 있다.

예컨대 정보수사기관이 감청을 마치면 그 기관장은 감청 대상자에게 한 달 이내에 감청 사실과 기간 등을 서면으로 통지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를 통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통지하지 않기 위해 편법으로 감청영장 집행기간을 늘려 가며 악의적으로 통신비밀을 계속 침해하는 끔찍한 관행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감청영장을 청구할 때도 혐의 내용을 상세하게 규정하지 않는 것이 관행으로 되어 있다. 정보수사기관은 ‘국가안보와 정보 유출의 우려’를 내세워 영장을 개략적으로 신청하고, 법원은 기계적으로 발부해 주는 식이다. 따라서 영장 청구 때 혐의 내용을 더 명확히 하도록 법 규정을 고쳐야 한다.

법원의 영장 없이 정보수사기관이 36시간이나 감청할 수 있도록 한 ‘긴급통신제한조치’도 도청을 근절하지 못하는 요소다. 긴급 감청의 요건은 ‘안보를 위협하는 음모 행위’ ‘사망 상해의 위험이 있는 범죄나 조직범죄’라는 애매하고 포괄적인 것이고, 국정원장 등의 허가만으로 할 수 있게 돼 있다. 이러한 허점과 맹점을 철저히 점검해 법을 뜯어고쳐야 한다. 그래야만 정치 사찰 같은 구태(舊態)와 도청으로 인한 인권 침해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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