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정이현]한국소설이 재미없다고요?

  • 입력 2005년 8월 9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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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고 통탄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책 왜 이렇게 안 읽는 겁니까.”

지금 이렇게 비분강개한다고 해도 그 누구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독서 안 하는 사회. 그것은 이미 지겨운 관용구다. 특히 한국문학 시장의 축소와 관련해 소설가처럼 글 써서 먹고사는 직업을 가진 이가 총대를 메고 나설 때에는 “혹시 자기들 밥줄 좀 끊지 말아 달라고 징징거리는 거 아니야”라는 오해에 휩싸이기 십상이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그러니까 평소에 좀 재미있게 쓰란 말이야. 어렵고 고리타분한 얘기를 누가 읽어?” 아, 난감하고 당혹스럽다. 머릿속이 붕붕 울리는데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며칠 전 평소 자주 가는 한 대형 서점에 들렀다. 아무리 둘러봐도 한국소설 신간코너가 눈에 띄지 않았다. 이상하다. 여기 있었던 것 같은데…. 혼자 중얼거리다가 포기하고 직원에게 물어보니 얼마 전에 진열대 위치를 바꾸었다고 일러 준다. 앞줄에 나란히 있던 한국문학과 외국문학 판매대가, 이제는 외국문학만의 것으로 변경됐다는 것이다. 그럼 한국문학 신간은? 뒤로 밀려난 채 판매대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었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불볕더위를 피해 시원한 서점으로 피서를 나온 듯한 사람들이 빼곡히 붙어 서서 책을 읽고 있는 곳은 외국문학 판매대였다. 이토록 극심한 출판 불황의 와중에 그나마 몇몇 번역소설이 베스트셀러 상위 목록에 올라 있다는 것을 다행스러워해야 하는가. 정말 그런가.

미안하지만 나는 유보적인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다. 물론 현재 한국인에게 널리 읽히고 있는 번역소설 중에 훌륭한 작품이 포함돼 있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 이면은 복잡하다. 유명한 (잘 팔릴 만한) 해외 저자를 유치하기 위한 국내 출판사의 과당경쟁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는 대단한 평가를 받지 못한 작품이 국내 출판사의 과대 마케팅을 통해 세계적인 문제작으로 둔갑하는 경우도 있다. 출판사와 서점의 관심은 ‘돈’이 되는 외국문학 장사에 온통 쏠려 있을 뿐, 한국문학은 구색 맞추기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한국문학은 왜 늘 그 자리에 있느냐”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동감한다. 영상매체에 익숙한 새로운 세대를 독자로 끌어들이지 못한 점 등도 뼈아프다. 그러나 창작을 하는 입장에서 나는 독자들이 한국문학에 대해 일정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우리 소설들 다 뻔하지 않으냐고, 그러니 외국문학에 밀릴 만하다고 말하는 당신. 바로 지금 우리 문학의 최전방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젊은 소설가 이름 세 명만 무작위로 대보시라. 올해 읽은 그들의 소설은 무엇인가. 초판 3000부조차 다 팔지 못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온 몸으로 부단히 한국문학사를 갱신해 나가는 작가가 우리 문단에는 여럿 있다. 그리고 그들이 보여 주는 문학적 주제와 개성은 매우 다양하다.

가끔은 스크린쿼터라는 제도가 있는 한국 영화계가 부럽기도 하다. 이번 주 한국영화의 스크린 점유율이 70% 이상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한국문학의 점유율은 얼마나 될까? 그렇다고 해서 도서쿼터제라도 시행해 달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만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이 내팽개쳐진 한국문학이 이대로 말라죽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좀 응원해 달라는 것이다. 함성이 가득한 그라운드를 달리는 축구선수가 더욱 힘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한여름이다. 더욱 뜨거운 세계 혹은 무섭도록 서늘한 세계로 안내해 줄 우리 소설들이 지금 서점의 모퉁이에서 조용히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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