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차수]문화를 찾는 아이들

  • 입력 2005년 8월 9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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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에는 활기가 넘친다. 동아·LG 국제 만화 페스티벌을 보기 위해 많은 학생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작품 안내문을 꼼꼼하게 베껴 쓰는 아이들, 재미있는 작품을 보며 조잘대는 학생들은 보기에도 좋다.

서울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원화로 보는 20세기 현대미술전’에도 학생들이 몰리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하루에 4200여 명이 몰려 줄을 서서 관람해야 할 정도로 붐볐다.

이곳뿐이 아니다. 여름방학을 맞아 웬만한 문화 현장에는 어디를 가나 학생들이 넘쳐 나고 있다. 많은 학교에서 전시회나 공연 관람을 방학숙제로 내 준 때문이다.

숙제라는 강제성을 띤 것이 걸리기는 하지만 어려서부터 미술 감상이나 공연 관람 등 문화생활 습관을 길러 주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학생들은 평소 수업에 쫓기고 갖가지 학원을 오가느라 정신이 없다. 많은 중고교생에게 영어 수학뿐 아니라 논술학원도 필수 코스다. 초등학생들도 이에 못지않다. 피아노 태권도 등 하루에 학원 서너 곳을 오가는 초등학생이 많다.

이런 아이들에게 문화 현장 학습은 수학 영어 문제풀이 능력을 길러 주는 것 못지않게 가치 있는 일이다. 문화 예술은 정서를 순화하고 문화적 상상력을 길러 준다. 사람 됨됨이를 바르게 하는 인성교육에 예술만 한 것도 없다. 더욱이 문화와 콘텐츠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문화적 감수성과 독창성이 뛰어난 사람들이 융숭한 대접을 받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문화교육도 다른 사교육과 마찬가지로 가정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고학력에 경제 사정이 좋은 부모일수록 아이들 문화교육에 열성적이다. 공연장이나 미술관에 가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아이들 손을 잡고 문화현장을 찾은 부모들은 얼핏 보기에도 여유가 있어 보인다. 맞벌이 부부나 결손가정의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공연이나 전시를 관람할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학교 교육의 평준화뿐 아니라 문화교육의 평준화에도 신경 써야 할 때다. 가정 형편 때문에 문화행사를 볼 기회가 적은 어린이들에게 기회를 마련해 주는 일에 우리 사회 전체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

경기도 문화의 전당이 실시하고 있는 ‘사랑의 문화 나들이’는 문화교육 평준화의 모범사례로 꼽을 만하다. 경기도 문화의 전당은 보육원 등 복지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어린이들과 거동이 불편한 장애아들을 방학 동안에 초대해 공연을 보여 주고 수원지역 관광도 시켜 주고 있다. 홍사종 경기도 문화의 전당 대표는 “쓸쓸하게 방학을 보내야 하는 복지시설 아이들에게 문화를 즐길 기회를 주기 위해 ‘문화 나들이’를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교육에서 한 가지 더 신경 써야 할 점은 감상 예절을 가르치는 것이다. 공연장이나 미술관 같은 곳에서는 현장교육을 할 수 있다. 아이들이 뛰고 떠들면 안 된다는 사실을 곧바로 느낄 수 있다. 문화시설을 찾는 아이들에게 이런 점을 알려주고 조용히 질서 있게 관람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자녀들과 함께 문화 현장을 찾아보자. 아이들을 모범적인 사회인으로 키우는 지름길 중 하나가 문화를 즐기는 능력을 길러 주는 것이다.

김차수 문화부장 kim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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