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대한민국/21세기 新고전 50권]<1>우연과 필연

  • 입력 2005년 8월 8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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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은 우주의 인식 양식인 동시에 우주의 지도이다. 선장이 바다 지도 없이 항해할 수 없고, 군인이 일선지역의 군사지도를 갖추지 않고서는 전투를 제대로 해낼 수 없듯이 인간은 우주의 지도에 해당되는 세계관을 갖추지 않고서는 제대로의 삶을 살아갈 수 없다. 어떤 시대의 어떤 문명, 어떤 인간이고 나름대로의 다양한 세계관을 갖고 있다. 그런데 바로 세계관의 다양성이 문제가 된다. 지구가 하나의 마을이 된 사이버 시대의 오늘날에도 인류의 모든 공동체 및 개개인이 공유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보편적 세계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의 의인적 세계관은 과학의 기계론적 세계관과 충돌하고, 과학에 전제된 유물론적 세계관은 철학적 관념론에 전제된 인간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세계관과 공존할 수 없으며, 생명과 인간의 근원에 관련하여 창조론과 진화론이 정면충돌한다. 우주 전체의 모든 것을 단 하나의 실체의 다양한 양상으로 보는 일원론적 세계관은 물질적 현상과 정신적 현상 간의 단절을 인정하는 이원론적 세계관과 공존할 수 없고, 헤겔이나 마르크스의 목적론적 세계관은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의 인과적 세계관과 대립한다.

196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자크 모노의 저서 ‘우연과 필연’은 바로 위와 같은 세계관들 간의 갈등의 맥락에서 철학적 주목을 끈다. 그의 저서의 내용은 특정한 자연현상에 대한 과학적 이론이 아니라 우주 전체에 대한 철학적 세계관이다. 그는 기존의 세계관들에 대한 통시적이고 공시적인 검토를 통해 과거의 신화, 종교 및 철학적인 세계관들을 몽땅 비판한다. 또 그것들을 새롭게 설명할 수 있는 자신의 첨단과학 지식에 근거한 자신의 세계관을 제안한다.

그는 헤겔류의 관념철학에는 물론 마르크스류의 유물철학에도 잠재해 있는 물활론적, 의인적 그리고 목적론적인 이원론적 우주관과 창조론적 인간관을 맹렬히 비판하고 그것을 물리적, 탈의인적, 그리고 탈목적론적 일원론적 우주관과 진화론으로 대치한다. 그는 우주 안의 모든 현상이 인과법칙에 의해 설명된다 해도 그러한 인과법칙은 우연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언뜻 보기에 ‘반과학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인과율에 지배되지 않은 우주철학’을 주장한다.

그의 세계관에서는 물질로부터의 생명의 탄생, 동물과 인간의 관계, 진리의 본질, 인간의 자유의지와 진선미에 대한 의식은 한결같이 우연의 산물로 나타나고, 그것들의 가치는 생물학적 뿌리와 그것들의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된다. 내가 알 수 있는 한 모노의 세계관보다 더 종합적이고 더 설득력을 갖춘 세계관을 나는 아직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것이 내가 ‘우연과 필연’이 철학적 고전의 범주에 들어가야 한다고 믿는 근본적 이유이다.

모노의 저서의 가치는 그의 이론적 성취에 끝나지 않는다. 그가 영원한 침묵을 지키는 방대한 우주와 그 한복판에서 인간과 지구의 운명이 걸려 있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 자신의 지혜에 비추어 어떤 행동을 혼자 선택할 수밖에 없는 고독한 인간의 조건을 언급할 때, 그는 이론적 과학자도 사념적 철학자도 묵시록적 종교인도 아닌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실존주의적 시인이다.

박이문 연세대 특별초빙교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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