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 공포 회오리]선진국 정보기관 도-감청 실태

  • 입력 2005년 8월 8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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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 선진국에서도 정보기관의 불법 감청(도청)이 큰 사회적 문제가 됐다.

미국의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국(CIA), 영국의 국내정보국(MI5), 독일의 연방정보국(BND), 프랑스의 대외보안총국(DGSE) 등이 대표적 국가정보기관이다.

미국에서 1924년부터 1972년까지 무려 48년간 FBI 국장을 지낸 에드거 후버는 도청 장치로 포착한 ‘X파일’을 이용해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안보라는 구실 아래 이뤄진 도청의 주 대상은 마틴 루서 킹 목사 등 인권운동가와 정재계 인사들이었다. 후버 국장이 8명의 대통령을 거치면서 자리를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도청 자료 덕분이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후버가 사망한 후 백악관에 의한 FBI 통제가 강화되고 도청이 개입된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사임하는 초유의 사건을 겪은 이후로 정치적 목적의 도청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프랑스에서는 1993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시절 엘리제궁이 주도한 도청 사건이 드러나 충격을 줬다. 엘리제궁 비밀팀은 1982년부터 3년간 환경단체 그린피스 소속 선박 침몰 사건, 미테랑 대통령의 혼외 딸 문제 등에 대한 정보 통제를 위해 르몽드 주필, 전기작가 등 150여 명을 도청한 의혹을 받고 있다. 정식 재판은 의혹이 폭로된 지 11년이 지난 작년 11월에야 겨우 시작됐다.

역대 정부가 국가 기밀을 이유로 조사를 불허하다가 1998년 리오넬 조스팽 당시 총리가 관련 서류들을 기밀에서 해제했기 때문이다. 미테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질 메나주 씨, 특별팀 책임자였던 크리스티앙 프루토 씨 등이 관련 인물로 법정에 서고 있다.

각국 정보기관의 해외 도청은 요즘도 심심치 않게 문제가 되고 있다. 영국의 정보기관이 이라크전쟁 발발을 앞두고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전화를 도청했다가 작년 클레어 쇼트 전 영국 국제개발장관의 폭로로 드러났다. 해외 도청은 발각돼도 진실 규명이 쉽지 않아 외교적 공방에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각국의 해외 도청 실태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

서방 선진국은 모두 통신비밀 관련법을 제정해 감청을 제한하고 있다. 다만 9·11테러 이후 테러 대책으로 감청의 허용 범위가 확대되는 추세여서 그 한계가 자주 논란이 되고 있다.

미국은 9·11테러 이후 ‘애국법’을 제정해 감청을 허용하는 중대 범죄 리스트에 테러 관련 범죄를 새로 추가했고, 상원은 1일 이 규정의 효력을 4년 더 연장하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얼마 전에는 FBI에서 아랍어 해독요원이 부족해 풀지 못하는 감청 테이프가 8000시간 분량에 이르는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팻 로버츠 상원 정보위원장은 또 테러 범죄에 관해 판사의 영장 없이 FBI 고유 권한으로 통화기록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독일의 연방 통신비밀제한법은 수사상 필요에 의한 감청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 혐의가 없는 예방 차원의 감청은 허용되지 않는다.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7일 테러 방지를 위해 포괄적인 예방 감청을 허용한 니더작센 주 경찰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는 7·7런던테러 이후 ‘테러방지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테러 활동에 관련된 혐의자에 대해 사법부의 판단을 받지 않고 장관의 명령만으로 통신비밀권 등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이 법안은 국회 안팎에서 반발을 사고 있다.

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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