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송영언]호루라기 불 사람 누구 없소?

  • 입력 2005년 8월 8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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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정부에 이어 김대중 정부에서까지 국가 정보기관의 불법 감청(도청)이 자행됐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면서 문득 ‘호루라기 부는 사람(whistle blower·내부 고발자)’이 떠올랐다. 1994년 국가안전기획부에 도청 전담 ‘미림팀’이 재구성될 무렵이나 국가정보원에 휴대전화 감청장비가 운용되던 DJ 정부 초기, 이에 대한 내부 고발이나 제보(提報)가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당시 겉으로는 민주화와 인권을 내세우면서도 뒤로는 여전히 ‘검은손’을 움직이는 음습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데도 국민은 잘 알지 못했다. 그때 누군가가 나서 이 같은 권력의 추악한 이중성(二重性)에 ‘호루라기를 불었다면’ 그들의 민주화 구호가 오늘처럼 초라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직 내부의 은밀한 불법 행위는 내부자의 ‘의로운 고발’이 없으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내부 고발은 조직의 건강성을 살리는 경고음이자 안전장치인 것이다. 1974년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하야(下野)를 몰고 온 워터게이트 사건도 도청에 대한 내부 고발이 시발(始發)이었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부 고발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나서는 것은 두려워한다는 점이다. 조직과 사회의 차가운 시선 때문이다. 실제로 내부 고발을 했다가 ‘왕따’당하거나, 인사에 불이익을 받고, 결국 일자리를 잃는 경우가 많다. 참여정부 들어서도 권력 비리나 실정(失政) 얘기를 꺼냈다가 ‘문제가 많은 사람’으로 매도된 공직자나 국책기관 연구원이 여럿 있었다.

이 때문에 곪을 대로 곪은 조직 내부의 문제들은 오히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터지게 된다. 특정인이 어려운 처지에 있거나, 타의에 의해 조직을 떠난 후 협박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공익(公益)보다 사리(私利)가 앞서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도청 테이프가 복직(復職)이나 인사 청탁, 이권(利權)의 수단으로 활용된 ‘안기부 X파일’ 사건이 바로 그렇다. 이는 내부 고발이 아니라 협잡질에 불과하다.

국가청렴위원회(전 부패방지위원회)는 지난해 39건의 공직자 내부 고발을 조사해 43명을 기소하고 1328억 원을 추징 또는 회수했다. 내부 고발 문화가 정착된 선진국에 비하면 매우 낮은 실적이다. 청렴위는 내부 제보자에 대한 신분 보장과 보상을 강화해 이 제도를 활성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최근 개정된 부패방지법도 내부 고발자에게 불이익을 줄 경우 과태료 부과는 물론 형사처벌까지 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법이 아니다. 무엇보다 내부 고발이라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회 일반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정부기관이든 민간기업이든 조직의 울타리 안에 내부신고제를 활성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내부 고발은 확신, 자신감, 조직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고발 내용이 공익에 기반을 두고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허위나 음해성으로 밝혀지면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

국정원은 2002년 3월 이후에는 도청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도청은 없다’던 YS, DJ 정부의 주장이 거짓으로 드러난 마당에 DJ 정부 마지막 1년이나 참여정부의 결백(潔白)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거기, 호루라기 불 사람 누구 없소?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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