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 공포 회오리]1960년대 中情 ‘여론조사팀’이 시초

  • 입력 2005년 8월 6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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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불법 감청(도청) 조직인 ‘미림(美林)팀’의 탄생과 해체, 재조직 과정 및 보고체계 등이 5일 국정원의 자체조사 결과 발표로 상세하게 드러났다.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존재하던 미림팀이 도청 등 첨단수법을 사용하게 된 것은 1991년 9월 공운영(孔運泳) 씨 주도로 5명으로 구성된 팀이 만들어지면서부터였다. 이 팀은 김영삼(金泳三) 정부 들어 1993년 7월 해체됐다가 이듬해 6월 공 씨 등 3명으로 다시 구성돼 1997년 11월까지 3년 5개월 동안 주요 인사의 동향을 도청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미림팀 태동과 재구성, 해체=국정원 발표에 따르면 미림팀은 중정 시절인 1960년대 중반부터 존재했다. 당시 중정 내의 공식 명칭은 ‘여론조사팀’이었으며, 고급 요정 등의 주인과 여종업원 등을 관리하며 출입하는 고위인사들의 동향을 탐문하는 정도의 활동을 했다.

1991년 9월 공 씨가 팀장이 되면서 미림팀은 도청 수법을 쓰는 조직이 됐다. 공 씨의 1차 팀이 활동을 중단하게 된 계기는 1992년 대통령 선거전이 열기를 더해가는 과정에서 도청 의혹이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해 9월 담당 국장은 “(송신기가 적발되는 등) 사고가 나면 감당할 수 없으니 활동을 중단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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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림팀은 1992년 12월 도청 활동을 중지하고 사무실 캐비닛에 보관 중이던 도청테이프 40∼50개를 대선 직후 청사 내 소각장에서 소각했으며 이듬해 7월 공 씨 팀은 해체됐다.

1994년 6월 공 씨의 2차 미림팀이 재건된 것은 문민정부 출범 후 안기부 요원들의 기관출입이 금지되는 등 정보수집이 저조한 데 따른 것이라고 한다.

정보 부족으로 고민하던 오정소(吳正昭·당시 국내정치정보 수집담당 국장) 전 국정원 1차장은 서기관급에서 사무관급인 경제과 수집관으로 강등된 공 씨를 불러 “승진 등 인사에 배려할 테니 과거 경험을 살려 미림팀을 재구성해 획기적으로 활동해 보라”고 지시했다.

공 씨 등 3인으로 구성된 2차 미림팀의 주요 활동은 △1997년 12월 대선 직전 여당 내부의 동향 △김영삼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 측근인사의 동향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동향 수집 등이었다.

수집된 정보는 초기에는 담당과장을 거쳤으나 당시 담당 국장이었던 오 전 차장은 ‘민감한 내용’이라는 이유로 자신에게만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오 전 차장은 1차장으로 승진한 뒤에는 “내게 직보(直報)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균 하루에 1, 2개씩 생산된 테이프는 일시 장소 대화자 이름이 붙여져 미림팀 사무실 내 이중안전장치가 부착된 캐비닛에 보관했으며 열쇠는 공 팀장이 직접 관리했다. 녹음상태가 불량하거나 정보가치가 적은 테이프는 6개월 주기로 평균 200여 개씩 소각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고 국정원은 밝혔다.

공 씨의 2차 미림팀은 1997년 대선 직전 미림팀 정체 노출 시 부담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활동을 중단했고 이듬해 4월 정식 해체됐다.

▽회수와 폐기=1999년 11월 당시 천용택(千容宅) 국정원장은 미림팀의 도청 테이프가 외부에 유출된 것을 파악하고 폐기를 지시할 때 자신이 관련된 내용이 일부 테이프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공 씨는 자신을 접촉하러 온 당시 국정원 감찰실장에게 “천 원장 관련 내용이 있으니 원장에게 직접 갖다 주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고, 이에 천 원장은 “한번 만나보고 싶다”며 관심을 표명했다는 것. 이에 따라 천 전 원장 관련 내용이 무엇인지, 그가 도청 테이프를 빼돌리지 않았는지 등이 의문점으로 남는다.

하지만 이에 대해 국정원은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공 씨와 천 씨의 만남은 1999년 12월 천 원장의 급작스러운 경질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자진 반납 요구에 순순히 응하지 않았던 공 씨에 대해 압수수색 등 강제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국정원 조사에서 당시 감찰실장은 “(전직 직원에 대한) 수사권이 없어 검찰과 협조하는 과정에서 유출 사실이 노출될 경우 조직에 누를 끼칠 것 같았고, 공 씨가 반발해 녹취 내용을 폭로할 경우 등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동료 미림팀원의 간청으로 공 씨는 1999년 12월 4일 라면 상자보다 약간 큰 상자 2개에 녹음테이프 261개, 녹취록 5권(2300여 쪽) 등을 넣은 뒤 너비 5cm의 황색테이프로 칭칭 감아 단단하게 밀봉한 뒤 국정원에 넘겼다. 하지만 테이프에 대한 소각은 3주일이 지난 임동원(林東源) 원장 취임일(12월 26일) 이후에 이뤄졌다.

한편 1994년 미림팀의 재구성 당시 오 전 차장 외에 당시 정권 실세의 개입이 없었는지는 이번 조사에서 밝혀지지 않았다. 국정원은 도청 내용이 이원종(李源宗) 전 정무수석-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金賢哲) 라인으로 전달됐다는 의혹에 대해 전·현직 직원 10여 명을 조사했지만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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