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도청 회오리]국정원 ‘고해성사’ 의문점

  • 입력 2005년 8월 6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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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때도… 1995년 11월 국가안전기획부를 방문한 김영삼 대통령(왼쪽)이 안기부 간부들과 악수하고 있다. 김 대통령 시절 누가 안기부의 도청을 지시했고 그 내용을 보고받았는지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YS때도…
1995년 11월 국가안전기획부를 방문한 김영삼 대통령(왼쪽)이 안기부 간부들과 악수하고 있다. 김 대통령 시절 누가 안기부의 도청을 지시했고 그 내용을 보고받았는지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5일 국가정보원이 김대중(金大中) 정부 말기인 2002년 3월까지 국정원에 의한 불법 감청(도청)이 이뤄져 왔고 휴대전화까지 도청했다고 발표한 것은 국정원으로서는 고통스러운 ‘고해성사’다.

국가 정보기관의 장(長)이 해당 기관의 도청 사실을 밝힌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

그러나 이 같은 고해성사를 액면 그대로 믿기에는 너무나 많은 의문과 불신이 퍼져 있다.

▽지금은 도청이 없을까=김영삼(金泳三) 정부 시절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의 도청 조직인 미림팀의 실체를 폭로한 전 국정원 직원 김기삼(40) 씨는 “국정원이 2002년 3월까지만 도청을 했다는 발표는 믿을 수 없다”고 5일 말했다.

DJ때도…
1998년 5월 12일 김대중 대통령(오른쪽)이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이 바뀐 국가안전기획부를 방문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부훈을 ‘정보는 국력이다’로 바꾸고 원훈석 제막식을 가졌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김 씨는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 의원이 2002년 9월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국정원의 도청 문건을 폭로하자 국정원이 감청 업무를 담당하던 과학보안국을 10월경 폐지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국정원이 감청 업무를 중단했다고 발표한 이후의 대화내용이 담긴 도청 문건은 도대체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김 씨는 또 “과학보안국은 폐지되기 전 휴대전화 도청 장비를 자체적으로 개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씨의 주장을 떠나 도청장치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미림팀처럼 대화 장소에 가서 원시적인 방법으로 도청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특히 일부 파트의 움직임이 다른 파트의 직원에게 전혀 드러나지 않는 정보기관의 특성상 상부의 지시에 따라 얼마든지 소규모의 도청팀을 만들 수 있었던 분위기였다.

또 휴대전화와 일반전화의 대화내용은 굳이 첨단 도청장치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국정원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대체로 부정적이다.

불법이지만 가장 효과적인 정보 수집 방법인 도청을 어떤 정보기관도 쉽게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윗선에서 지시가 없더라도 부하 직원이 정보 수집 차원에서 얼마든지 도청을 할 수 있다.

‘정보 수집의 필요악’인 도청이 국정원뿐 아니라 다른 정보기관에서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도청자료 전부 폐기됐나=과거 정보기관에 의해 이뤄진 광범위한 도청 자료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도 의문이다.

국정원은 이날 “1995년 9월 이전의 자료는 일반 녹음기의 릴 테이프로, 그 이후 자료는 PC파일로 저장했다”면서 “릴 테이프와 PC파일을 1개월 후 폐기해 남아 있는 자료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공운영(孔運泳) 전 미림팀장처럼 안기부는 다 폐기한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기대’에 불과했다는 것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특히 PC파일은 언제든지, 아주 손쉽게 복사와 전달이 가능하기 때문에 유출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 도청이 통상적으로 국정원 본부가 아닌 서울 시내 주요 안가에서 소규모 팀에 의해 이뤄지는 것도 자료 유출의 가능성을 높게 한다.

1997년과 2002년 대선 당시 국정원 직원들이 여야 후보에게 ‘줄 대기’를 시도한 것은 실제로 자료 유출이 이뤄졌다는 주장에 더욱 무게를 실리게 하는 대목이다.

1997년 대선 당시 내부 자료를 유출해 모 후보에게 준 A 씨와 2002년 대선에서 특정 후보에게 줄을 선 B 씨 등의 사례는 국정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전 국정원 직원은 “도청이기 때문에 자료 처리에 대한 규정이 사실상 없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도청 내용을 지금 일일이 다 파악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결국 예산이나 조직이 베일에 싸인 정보기관의 특성상 도청 내용이나 자료 유출을 파악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

▽엇갈리는 주장=국정원이 발표한 중간 조사 결과와 사건 관련자들의 진술이 엇갈리는 것도 앞으로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할 부분이다.

국정원에 따르면 천용택(千容宅) 전 국정원장이 이건모(60) 당시 감찰실장에게 도청 테이프 회수를 지시한 것은 1999년 11월 하순.

그러나 이 전 실장은 “1999년 여름 상부로부터 도청 문건에 대해 알아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다. 국정원의 발표와 이 전 실장의 진술에 무려 2, 3개월의 차이가 존재한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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