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앞 인디밴드 지금은…]‘홍대앞=인디문화 메카’ 퇴색

  • 입력 2005년 8월 6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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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전 2시 홍익대 인근 A 댄스 클럽 내부 모습. 좁은 공간에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들어선 수많은 젊은이들이 격렬하게 몸을 흔들며 춤을 추고 있다. 김윤종 기자
5일 오전 2시 홍익대 인근 A 댄스 클럽 내부 모습. 좁은 공간에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들어선 수많은 젊은이들이 격렬하게 몸을 흔들며 춤을 추고 있다. 김윤종 기자
같은 질문을 각각 20대와 30대에게 해봤다. "홍대클럽을 아십니까?"

"아… 홍대 클럽 좋아해요. 가끔 친구들과 함께 '클럽 데이(Club Day)'를 찾거든요. 신나게 한바탕 춤을 추면 스트레스가 풀리죠."(20대)

"'크라잉 넛', '자우림' 같은 인디밴드들이 생각납니다. 대학 다닐 때는 종종 공연을 보러 갔었죠. 협소한 공연장이었지만 인디 밴드의 독특한 음악과 열정이 살아있었죠." (30대)

●부비부비 vs 슬램

5일 오전 1시 30분. 홍익대 인근의 A클럽. 입구부터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20대 초중반의 남녀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줄 서 있다. 지하1층 클럽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흑인가수 몬텔 조단의 격렬한 힙합 리듬과 클럽 안을 가득 메운 사람들로 숨이 막힐 정도. 800여명의 인원이 좁은 공간에서 정신없이 춤을 추고 있다.

4시간 전인 9시30분. 홍대 앞 라이브 클럽 롤링 스톤즈에서는 15명의 관객이 그룹 '모닝본드'의 공연을 봤다. 롤링 스톤즈의 평일 관객은 20∼30명, 주말에도 최대 150명을 넘지 못한다. 그러나 댄스클럽인 A클럽의 경우 하루 관객만 3000명 정도.

2005년 현재, 홍대 클럽 문화는 DJ가 힙합, 하우스 등 음악을 틀면 관객이 춤을 추는 '댄스클럽'과 밴드 연주를 중심으로 하는 '라이브 클럽'으로 양분된다. 이중 주도권을 쥔 것은 댄스클럽.

홍대 인근의 클럽 전체 수는 30여개를 헤아린다. 그 중 20개 이상이 댄스클럽, 10여개가 라이브 클럽이다. 댄스 클럽으로는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였던 양현석이 운영하는 NB, M2, 후퍼, 큐브 등이 유명하고 라이브 클럽은 롤링 스톤즈, DGDB, 재머스, 사운드 홀릭 등이 잘 알려져 있다.

클럽 수의 차이는 두 배지만 참가인원은 10배 이상 차이난다. 매달 마지막 금요일에 댄스클럽들이 함께 여는 '클럽데이' 참가인원은 대략 7000~8000명. 라이브 클럽 중 규모가 큰 사운드홀릭과 DGDB의 주말 관객은 각 300, 200 여명에 그친다. 라이브 클럽 운영자들은 "'클럽데이 하루 수입이면 라이브 클럽은 일년 먹고 산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홍대 클럽'하면 사람들은 인디밴드가 공연하는 라이브 클럽을 생각했다. 1990년대 중 후반 홍대 인디밴드가 한국 대중음악의 새로운 자양분으로 인정받으며 라이브클럽에서 이름을 떨치던 밴드가 속속 오버그라운드(제도권 대중음악계)로 진출했다. 현재 활동 중인 인기 밴드 '자우림', '크라잉넛', '넬', '체리필터' 모두 무명시절 홍대 라이브 클럽에서 실력을 다졌다. 하지만 2001년을 기점으로 댄스 클럽이 활성화되면서 요즘 젊은이들에게 '홍대 클럽'은 클러버(Cluber)로 대변되는 댄스클럽 문화로 받아들여진다.

●홍대 문화의 위기

홍대 클럽 문화의 헤게모니가 댄스클럽으로 넘어가면서 한편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험적인 창의성을 중시하는 라이브 클럽과 달리 댄스클럽은 대중들에게 춤추고 노는 장소로만 인식돼 홍대 문화가 유흥문화로 변질되고 있기 때문.

댄스클럽에서는 남녀가 몸을 비비며 춤을 추는 '부비부비'와 부킹 문화가 유행한다. 올해 초에는 홍대 클럽에서 한국 여성이 외국인과 음란파티를 즐긴다는 사진이 인터넷에 유포돼 사회적인 물의를 빚기도 했다.

클러버 이선경(28) 씨는 "90년대까지는 댄스클럽에도 독특하고 개성 있는 음악을 들으러 오는 마니아들이 많았지만 이제 일부 대형 댄스 클럽들은 일반 '나이트'클럽처럼 돼가고 있다"며 홍대 특유의 다양성과 개성을 중시하는 문화가 약화되고 획일화된 유흥문화로 변질되고 있다고 걱정했다.

댄스클럽 모임인 '클럽문화협회' 관계자는 "클럽 문화 전반을 섣부르게 단정할 수 없지만 '부비부비', 클럽 대중화 등으로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인디 밴드 '카우치'의 성기 노출 사건으로 라이브 클럽 역시 위기를 겪고 있기는 마찬가지라는 고충도 나온다.

현재 '클럽문화협회'와 라이브 클럽들의 단체인 '라이브음악문화발전협회'간에는 교류가 없는 상태. '클럽문화협회'가 지난 해 4월 '사운드데이'라는 라이브 공연 축제 행사를 개최하는 과정에서 기존 라이브 클럽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최정한 클럽문화협회장은 "그간 클럽 운영 구조, 수익문제, 접근 거리 등 상호 어려운 점이 많았다"며 "하지만 홍대 앞 문화단체끼리 서로 간의 벽을 허물고 협력하는 등 홍대 문화의 다양성을 되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홍익대 앞 클럽 문화 용어
슬램록 음악 또는 기타 사운드에 맞춰 상체를 상하로 90도 이상 흔드는 행위.
부비부비흔히 남녀가 서로 눈이 맞았을 때 몸을 최대한 밀착시켜 추는 춤. 몸을 ‘비비며 춤을 춘다’는 데에서 유래한 의태어.
클럽 데이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1만5000원짜리 티켓 한 장을 사면 홍익대 앞 14개 댄스·힙합 클럽을 무제한으로 드나들며 즐길 수 있다.
클러버댄스 클럽, 힙합 클럽 등을 드나드는 ‘클럽 마니아’를 일컫는 말. 이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행위를 ‘클러빙’이라고 함.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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