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앰배서더 Really?]진공의 마술

  • 입력 2005년 8월 5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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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이 풍부한 여학생들은 장미꽃을 비롯한 여러 가지 꽃잎이나 클로버 잎을 말려 편지에 붙여 보내곤 한다. 이럴 경우 꽃잎이나 클로버 잎이 원래의 색이 아닌 갈색조로 바뀌고 본래의 향기는 거의 없어져 버린다. 그러나 요즈음 라면의 건조된 야채 수프를 보면 야채의 파란색과 파의 향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것은 진공의 마술이다. 꽃잎 같은 물체를 건조시키는 것은 물체에 함유된 수분을 증기로 바꿔 물체로부터 내보내는 과정이다. 대기압 실온에서 수분은 수증기가 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에 비해 장미꽃의 색과 향기를 내는 휘발 성분들은 쉽게 날아가고 세포들이 변한다. 그 결과 꽃잎의 향기나 색이 없어져 바랜 모습으로 마르며 영양분도 함께 빠진다. 하지만 진공에서는 장미꽃이나 파 등의 식물을 얼린 상태 그대로 말릴 수 있다. 승화 작용 덕분이다.

승화란 드라이아이스처럼 고체에서 직접 기체로 증발하는 현상을 말한다. 드라이아이스는 탄산가스를 얼린 고체로서 대기압 실온에서도 기체인 탄산가스로 승화한다. 하지만 얼음은 대체로 진공에서만 수증기로 승화될 수 있다.

승화 작용을 이용하면 식물이 언 상태에서 휘발성 성분이 날아가지 않고 세포가 변하지 않은 채 수분을 빨리 제거할 수 있다. 진공에서 꽃이나 양념은 색과 향기, 영양분을 유지한 채 싱싱하게 냉동 건조되는 것이다. 또 의약품이라면 약효 성분이 그대로 남을 수 있다.

냉동 건조 과정에서 보관물질을 미세한 구멍이 가득한 다공성 물질로 가공하는 일도 가능하다. 인스턴트 커피나 홍차를 냉동 건조하면 그 향기가 보존됨과 동시에 건조된 분말 속에는 스펀지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이런 분말은 미세 기공이 많아 냉수에 넣어도 물에 접하는 면적이 넓기 때문에 쉽게 녹는다. 물을 끓이지 않고도 아이스커피나 아이스홍차를 만들 수 있다. 분유나 알약도 냉동 건조해 영양분이나 약 성분을 보존함과 동시에 위의 소화흡수를 쉽게 해 효과를 높인다. 우주 비행사가 먹는 아이스크림도 냉동 건조한 것이다.

정광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진공기술센터 책임연구원 khchung@kriss.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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