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의 온라인 시위

  • 입력 2005년 8월 4일 15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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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당을 살려내라!’

전국의 어르신들이 단단히 화가 났다. ‘노인들의 쉼터’ 경로당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

지난 해 선거법 개정으로 지방단체장 및 후보자는 경로당에 일절 기부행위를 할 수 없게 되자 경로당을 찾는 위문 발길이 뚝 끊기고 지자체의 각종 지원도 자취를 감췄다. 옹색하지만 인정이 넘쳤던 경로당은 점점 썰렁해지고 노인들의 발길도 차츰 줄어들고 있다.

이에 분개한 노인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팔을 걷어붙였다. 익숙지는 않지만 '사이버 시위’에 돌입한 것.

전국의 경로당 회원들은 보건복지부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국민고충처리위원회 홈페이지에 ‘220만 경로당 노인들의 외침’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선거법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선관위 홈페이지에는 1일부터 3일 오전까지 150여건, 복지부 홈페이지에는 50건이 넘는 호소문이 올라왔다.

노인들은 호소문에서 “경로당의 즐거움은 흉허물 없는 대화와 바둑, 장기와 10원짜리 화투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점심을 함께 먹는 것이다”고 말하고 "지금까지 쌀은 행정관청에서 지원받고 부식은 할머니들의 도움으로 만들어 먹는 등 경로당엔 인정이 흘러 넘쳤다. 그런데 선거법이 개정된 후 점심용 쌀 지원이 중단되더니 추석에 떡과 과일을 보낸 16개 구청장이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되기까지 했다”고 섭섭함을 토로했다.

노인들은 “노인을 위하고 명절에는 잔치를 베푸는 미풍양속이 송두리째 없어졌다”며 “하루빨리 선거법을 고쳐 경로당을 옛날과 같은 분위기로 만들라"고 요구했다.

선거법 제113조는 ‘국회의원 지방의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및 후보자(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포함)와 그 배우자는 선거구 안에 있거나 선거구민과 연고가 있는 기관 단체 시설에 기부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해놓고 있다.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노인 분들이 개정된 법 내용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이 많다”며 “경로당, 노인정에 대한 보건 복지 사업이 모두 금지되는 것이 아니다. 법령이 정한 범위 안에서는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해명했다.

각 지자체가 연초에 사업계획을 수립, 예산을 확보해 시행하되 단체장 개인의 선심으로 오해받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것.

선관위는 지자체의 지원이 줄어드는 원인에 대해 “과거에는 노인회에서 행사를 하면 기부자가 찾아가서 인사말이라도 해왔다. 그러나 작년 선거법이 바뀐 후 이런 행위조차도 일절 금지하기 때문에 괜히 기부해봤자 손해 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대한노인복지회 강경남 실장은 “지자체에서는 혹시나 선거법에 저촉될까 몸을 사리고 지원을 꺼리고 있다”며 “노인들이 데모나 촛불 시위 등은 할 수 없기에 온라인을 통해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 씨는 “저소득층과 무의탁 노인, 독고 노인들에게는 지금도 자유로운 지원이 가능한데 ‘경로시설’에도 똑같은 혜택을 줘 지자체가 예전처럼 마음 편히 노인들을 방문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전국의 경로당 수는 5만1천여 개, 대한노인회에 등록된 곳은 5만466개이다.

김수연 동아닷컴 기자 s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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