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포퓰리즘 법안에 부글부글

  • 입력 2005년 8월 4일 0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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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거나 대중이 원하는 대로 만들면 다 법인 줄 아나.”(서울고등법원 A 부장판사)

“무슨 법을 동호회 회칙처럼 만드나. 국회의원들이 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서울서부지법 B 판사)

최근 국회의 입법 추세를 보면서 법조인들 사이에서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입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직자 신분인 판·검사들은 대놓고 말을 못하고 속을 부글부글 끓이는 모습이다. 언뜻 그럴듯해 보이는 법도 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말이 안 되거나 부작용이 우려되는 내용이 많다는 것.

한나라당 권영세(權寧世) 의원은 1일 ‘어린이와 임산부 옆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못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처벌 규정도 없는 캠페인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재래시장 활성화 차원에서 여야가 추진하는 대형 할인점 영업시간 규제 법안에는 일반인들조차 “재래시장 활성화 대책이 대형 할인점 영업시간 축소라니…. 한심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 홍준표(洪準杓) 의원의 ‘성인 1인당 1주택 제한법’과 병역기피 의혹이 있는 국적 포기자를 외국인 취급하는 내용의 ‘재외동포법 개정안’은 인권과 자본주의 원리에 위배된다는 비판까지 제기됐다.

세금 체납자의 출국을 금지시키는 내용의 여권법 개정안(열린우리당 주승용·朱昇鎔 의원)도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불법 도청 테이프와 녹취록 공개를 둘러싼 정치권의 특별법 제정 움직임은 법조인들의 불만에 기름을 끼얹었다. 불법(도청)을 법으로 인정해 주면 법치를 세우기 위해 기울였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는 논리다. 검찰의 한 고위 간부는 “법조인 대다수가 테이프와 녹취록 공개에 반대하고 있지만 공개하자는 여론이 높아 섣불리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이번 특별법들은 포퓰리즘의 극치”라며 “국회의원들이 입법부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법 공부부터 해야 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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