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박찬욱 감독의 ‘내숭’ 테크닉

  • 입력 2005년 8월 4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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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 내숭극.’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인 ‘친절한 금자씨’를 딱 한마디로 표현하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금자씨’를 관통하는 주제는 분명 ‘복수’이지만, 감독이 ‘복수’라는 재료를 요리하는 방식은 ‘내숭’이라는 테크닉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내숭’은 박 감독의 지적 유희가 작동하는 시스템이며, 배우 이영애의 엄청난 연기 변신을 가능케 한 마술의 비밀인 동시에, 심각하고 처절한 이 영화를 코미디로 보이게 만드는 핵심 기술이다. ‘겉과 속이 다른’ 이 영화 속 내숭코드를 벗겼다.

①색깔의 내숭

아주 아름다운 색깔인데, 그 색이 상징하는 뜻은 아주 끔찍한 경우다. 빨강이 대표적. “너무 친절해 보일까봐” 금자는 자신의 눈꺼풀에 빨강 색조화장을 한다. 핏빛 복수를 다짐하며 붉은색 화장을 하는 그녀의 모습이 얼토당토않게도 세련되고 섹시해 보이는 것.

금자가 매일 밤 기도하며 복수를 다짐할 때 켜놓는 양초도 역시 빨간색이다. 한편 금자의 속죄를 나타내는 색깔은 흰색.

금자는 자신이 만든 흰색 케이크에 심지어 머리를 처박는가 하면, 혀를 내밀어 내리는 흰눈을 먹기까지 한다. 사실 색깔 내숭의 극치는 금자(아니 이영애)의 얼굴 자체. 금자(아니 이영애)는 13년간 복역하고 나온 자신에게 두부를 내밀며 사랑을 표시하는 전도사에게 핏기 하나 없이 천사 같은 하얀 얼굴로 말한다. “너나 잘하세요.”

②소리의 내숭

이영애가 아니라면 애당초 불가능했을 내숭기법이다. 얄미워서 꼬집어주고 싶을 정도로 말을 조곤조곤 내뱉는 이영애(아니 금자)는 시종 교양 있고 새침해 보이는 목소리지만, 그 목소리에 실린 말의 정체는 기가 막힐 지경. 그녀는 간들어진 목소리로 권총 방아쇠를 당기며 “안뇽(녕)히 가세요”하는가 하면, 고교생의 발랄하고 해맑은 목소리로 수화기에 대고 이렇게 말한다. “별일은 아니구여(요). 선생님, 제가 임신했는데여(요). 네. 임신이요, 임.신.”

③디자인의 내숭

영화 속 소품을 통한 내숭이다. 해당 소품이 가진 의미와 그 쓰임새가 충돌하는 경우다. 금자가 복수의 도구로 선택한 사제 권총의 설계도가 주도면밀하게 그려진 곳은 불교경전인 ‘법구경’이다. 게다가 금자는 권총을 바로크적인 양식미가 묻어나게 아주 미학적으로 디자인하고는 이렇게 말한다. “예뻐야 돼. 뭐든지 예쁜 게 좋아.”

④의사소통(커뮤니케이션)의 내숭

이 영화의 핵심적인 내숭이다. 금자는 아주 어릴 적 호주로 입양돼 간 자신의 딸과 말이 통하지 않는데, 의사소통의 간극을 이용한 내숭은 금자의 복수대상인 백 선생(최민식)이 백척간두에 몰린 자신의 목숨(금자가 백 선생의 머리에 총을 들이대고 있는 상황)은 아랑곳 않은 채 모녀간 대화를 이어주는 대목에서 절정에 이른다. 백 선생은 딸의 영어를 동화 구연하듯 너무나 감동적으로 엄마인 금자에게 통역한다. “이 아저씨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거야? 죽이려고?”사실 ‘영어에 젬병인 금자’라는 설정은 박 감독이 이영애와 함께 작업했던 전작 ‘공동경비구역 JSA’를 스스로 비틀고 희롱하는 것. ‘…JSA’에서 이영애는 영어에 능통한 유엔 소속 여군 장교로 나왔다.

이승재 기자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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