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전쟁’은 과연 끝났을까… 안정효씨 기행다큐 펴내

  • 입력 2005년 8월 4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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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참전 경험을 살려 기행 다큐멘터리 ‘지압 장군을 찾아서’를 펴낸 소설가 안정효 씨. 그는 베트남전을 승리로 이끈 보응 웬 지압 장군을 만난 뒤 “민족주의 시대의 화석을 보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종승  기자
베트남전 참전 경험을 살려 기행 다큐멘터리 ‘지압 장군을 찾아서’를 펴낸 소설가 안정효 씨. 그는 베트남전을 승리로 이끈 보응 웬 지압 장군을 만난 뒤 “민족주의 시대의 화석을 보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종승 기자
작가 안정효(64)씨가 사는 서울 은평구 갈현동 자택의 책상 유리 밑에는 지금은 쓰이지 않는 1달러짜리 미군 군표가 끼워져 있다.

이 책상 발치에는 역시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낡은 스미스 코로나 영문 타자기가 놓여 있다.

안 씨가 베트남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가져온 이 ‘유물’들은 오늘날 그에게 베트남전쟁이란 무엇이었는지 상기시켜 주는 ‘개인적인 참전비’와 같다. 그는 “당시 우리의 파병 결정은 미국으로부터 큰돈을 받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베트남전쟁에 지원한 개인적인 이유는 “헤밍웨이처럼 극한 체험을 겪고 나서영문으로 소설을 쓰기 위해서”였다.

올해는 베트남전쟁이 끝난 지 30년 되는해다. 그가 최근 펴낸 ‘지압 장군을 찾아서’(들녘·사진)라는 기행 다큐멘터리에는 그처럼 국가적인, 개인적인 이유에서 참전한 베트남전쟁을 되짚어 보는 ‘기억의 여로’가 담겨있다. 안 씨는 출세작 ‘하얀 전쟁’의 결산이 될 이 책을 16년 만에 쓰게 된 이유에 대해“전쟁 당시 찍어 온 사진들, 모아 온 자료들이 아까워 언젠가는 책으로 펴내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 책의 내레이터는 ‘하얀 전쟁’의 주인공이었던 ‘한기주’다. 안 씨는 “그는 바로 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제 베트남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픽션의 인물인 ‘한기주’의 목소리를 통해서만 들려줄 수 있는 전쟁의 실체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기주는 호찌민(옛 사이공)을 거쳐 나짱과 뀌뇽, 후에를 지나 하노이로 간다. 그 길은 베트남식 인력거인 시클로와 소형 버스인 딸딸이, 노란색 농(고깔모자)을 쓴 사람들, 하얀 아오자이를 입은 아가씨들이 지나가는 아열대의 거리다. 야자수가 서 있는 해변 도로를 넘어가자 고엽제가 뿌려졌던 밀림이 나오고, 허큘리스 수송기와 치누크, 휴이 헬리콥터가 날아다니던 하늘이 박격포탄 소리, 네이팜탄 터진 화염과 함께 환각처럼 나타난다. 그러나 그 같은 기억들은 굽이치는 희로애락의 감정보다는 예순 살이 넘은 한기주의 폭넓은 관조와 반성의 목소리에 실려 나온다.

안 씨는 이 책에서 전쟁 때 만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떠올린다. 일본인 사진기자 미네 히로미치 씨에 대한 기억은 각별하다. “미군 수송기가 미군의 오인 포격을 받고 두 동강난 채 추락하는 순간을 촬영해서 명성을 떨친 친구지요. 저더러 제대하면 같이 일본 통신사에서 일하자고 말하더군요. 나중에 장갑차를 탔다가 베트콩의 로켓포 공격을 받고는 숨을 거뒀다고 하더군요.”

제목에 나오는 지압 장군은 “베트남 통일의 아버지 호찌민의 오른팔이었던 군사전략가 보응 웬 지압”으로 안 씨가 2002년 한 방송사의 베트남 현지 취재 프로그램에 참여해 하노이에서 만난 인물. 안 씨는 “올해 아흔다섯 살인 그는 여전히 별 네 개가 군복 어깨에 반짝이는 ‘종신 대장(大將)’으로 있더라”고 말했다. 안 씨는 “우리는 잘살게는 됐지만 아직 통일을 못했다. 베트남 사람들은 통일을 이뤘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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