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파드국왕 타계]사우디왕국 왕위는 형제계승 전통

  • 입력 2005년 8월 2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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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는 압둘아지즈 초대 국왕 이후 그의 아들들인 사우드(2대), 파이살(3대), 칼리드(4대), 파드(5대) 국왕과 압둘라 왕위 계승자에 이르기까지 형제 계승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압둘아지즈 초대 국왕은 적어도 22명의 부인 사이에 아들만 45명을 두었으며 손자뻘 자손이 수천 명에 이르고 있다.

법률상으로 사우디 왕실은 압둘아지즈 초대 국왕의 아들이나 손자 중 ‘가장 유능한’ 사람을 새 국왕으로 선택할 수 있다.

사우디에서는 전통적으로 왕세제나 왕세자가 국왕의 사망이나 양위 때 자동적으로 즉위해 왔으나, 파드 국왕은 1992년 세대를 건너뛰어 왕위를 계승할 수 있게 한 새 법률을 도입했다. 이 법률은 자동 계승 조항을 없애 사우디에서 권력 다툼의 가능성을 열었다.

파드 국왕은 1995년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압둘라 왕세제에게 사우디를 이끌 것을 부탁했다. 다만 압둘라 왕위 계승자와 그 형제들은 이미 고령이기 때문에 사우디는 수년마다 새로운 국왕을 추대해야 할 형편이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압둘라 왕위 계승자는▼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왕위 계승자는 1995년 이복형인 파드 국왕이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져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 이래 지난 10년간 사우디아라비아를 실질적으로 통치해 왔다.

국내에서 정직과 반부패 의지로 존경을 받고 있는 그는 화려한 언사를 구사하지 않으면서도 나름대로 카리스마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특히 2001년 9·11테러 이후 사우디가 테러분자들을 비호해 왔다는 논란 속에서 미국과 맞서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나름의 독자 노선을 걸었다.

2002년 이스라엘의 점령지 철군과 이스라엘과의 관계정상화를 골자로 하는 평화안을 제시해 범아랍권의 지지를 받았고,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땐 미국의 요청을 거부하고 미군이 사우디 영토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이 같은 압둘라 계승자의 친(親)팔레스타인 정책과 미국의 이라크전쟁 지지 거부는 워싱턴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 그룹의 분노를 샀지만, 한편으론 중동과 유럽의 존경을 받았다.

그는 2003년 5월 알 카에다 세력이 사우디에서 테러 공격을 감행하자 단호히 테러분자 색출작전을 실행했고, 이는 미국과의 긴장을 완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는 올 4월 미국을 방문해 텍사스 크로퍼드 목장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환대를 받기도 했다.

성지인 메카의 시장으로서 공직에 첫발을 디뎠으며 1963년 국방차관이자 사우디 국가방위군의 총사령관으로 부임한 이래 아직까지 총사령관직을 맡고 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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