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함인희/막가는 방송, 파워에 취했나

  • 입력 2005년 8월 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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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1. KBS TV ‘시트콤’에서는 손자를 돌보다 손에 화상을 입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뺨을 맞는 장면이 방영되었다.

뉴스 2. MBC TV ‘음악캠프’ 생방송 진행 도중, 백댄서 2명의 성기 노출 장면이 생생하게 안방에 전달되었다.

뉴스 3. KBS 라디오에서는 한 아나운서가 모유 수유와 관련해서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발언을 한 것이 물의를 빚고 있다. 최근 방송사가 자체 생산해 낸 ‘뉴스’들이다.

이들 일련의 사태를 단순한 방송사고로 간주해 관대하게 이해하기엔 시청자나 청취자의 입장에선 불안하고 불쾌하며 불만스러운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시트콤 연출자의 강변인즉 실제 며느리에게 뺨을 맞는 시어머니가 존재하는 우리의 패륜적 현실을 고발하고자 했다 한다. 하지만 세 살 어린아이에서부터 여든 넘은 어르신까지 ‘불특정 다수’가 화면 앞에 앉아 있다는 기본을 고려하지 않았음은 극히 불만스럽다.

우리 방송 사상 초유의 사건으로 기록될 ‘성기 노출 사고’ 또한 인디그룹 특유의 생리와 생방송이었던 정황을 이해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여름 더위를 식혀 줄 시원한 음악을 기대했던 시청자들로선 포르노에 가까운 폭력적 장면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순간, 형언하기 어려운 불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방송 진행 중 아나운서가 무심코 던진 ‘다소 야한 농담’이 그저 웃자고 한 애드리브였건만 이토록 격렬한 반응을 불러올 줄 “미처 몰랐다”고 발뺌한다면, 이 또한 사석에서 나눌 수 있는 농담과 공중파를 통해 전달해도 좋은 유머조차 구분하지 못한 기본의 결여인 듯하여 불안하기까지 하다.

높으신 어른들, 예전엔 신문 기자가 나타나야 인터뷰를 시작했지만 요즘은 방송 카메라가 도착해야 인터뷰에 응한다고 한다. 활자 매체에서 시청각 매체로 권력이동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실례이겠다. 실제로 한 시사주간지의 조사에 따르면 KBS가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 매체로 3년 연속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2004년 한국언론재단의 조사에서도 지상파 TV, 라디오, 중앙 일간지, 케이블 TV, 인터넷 신문 등의 순으로 신뢰도가 높게 나타났다.

그런 만큼 이들 방송이 자신의 영향력에 안주한 채 시청률 경쟁에 과도하게 매달리거나 선정성·도덕성 논란에 휩싸일 경우, 그것이 미치게 될 부정적·파괴적 파장이 우리를 ‘위험사회’ 수준으로 몰아갈 가능성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더더욱 대중 매체 전반의 영향력은 우리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침투하여, 소비 취향을 만들어 주고 생활양식을 디자인하는 데 직접적 영향을 미침은 물론이요, 사회의 주요 화두는 무엇인지, 추구해야 할 가치와 규범은 무엇인지, 나아가 지금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등을 둘러싸고도 무시 못할 힘을 발휘하고 있다.

대중 또한 예전의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던 수용자의 지위를 벗어나, 점차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소비자 역할을 확대해 가고 있다. 방송 메시지의 일회성이 사이버 공간 안에서 재생과 복제를 거듭하고 있는 현실도 주목해야 할 변화이다.

위기는 위험한 기회라 했거늘, 이제 방송은 다종다양의 오명을 벗고 ‘유익한 파워’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를 정당화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또다시 방송의 파워 앞에서 불안과 불쾌, 불만과 분노를 느끼고 싶지 않다. 차제에 방송사 내부에서부터 자체 정화를 위한 시스템 구축 노력이 발 빠르게 진행되길 기대해 본다. 방송인으로서의 기본은 물론 ‘의도하지 않은 결과’까지 배려할 수 있는 전문적 자질에 대한 점검 또한 빼놓아선 안 될 것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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