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이호왕/백신은 ‘전염병 쓰나미’ 막는 방파제

  • 입력 2005년 8월 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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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빌 게이츠 재단은 후진국을 괴롭히는 질병 퇴치 연구 사업에 4억3700만 달러를 지원했다. 앞서 이 재단은 7억5000만 달러를 기부하는 등 지금까지 개발도상국을 위한 백신 사업에 무려 19억 달러 이상을 지원했다. 빌 게이츠 씨는 이렇게 엄청난 기금을 왜 백신 분야에 지원하고 있는 것일까?

작년 말 남아시아 해역에서 발생한 지진해일(쓰나미)은 2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 가 사상 최대의 자연재해로 기록되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매년 백신으로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의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감염성 질환은 5세 이하 어린이 500만 명을 포함해 매년 11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 가 세계 전체 사망 원인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감염성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의 90%가 가난한 개도국 국민이다. 경제학자인 제프리 삭스 교수는 가난한 나라들에 주로 피해를 준 쓰나미에 빗대어 이를 ‘침묵의 쓰나미’라고 표현한 바 있다.

백신은 이 같은 질병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비책이다. 백신은 천연두를 지구상에서 박멸했고, 소아마비도 곧 퇴치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생명공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암 등 각종 난치병의 예방과 치료를 위한 첨단 백신의 개발도 가속화되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과 개도국 간에는 심각한 ‘백신 격차(Vaccine gap)’가 존재한다. 주로 개도국을 괴롭히는 질병들은 소홀히 취급된다. 유럽과 미국에 새로운 백신이 도입되고 그 백신이 개도국에서 사용되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된다. 효능이 입증된 백신이 개도국에 도입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개도국에서 오히려 더 절실히 필요한 백신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해 무수한 인명 손실을 초래하기도 한다. 지난 5년 동안 해마다 3000만 명 이상의 개도국 어린이가 선진국에서는 당연시되는 백신 접종을 받지 못했으며, 이 때문에 연간 200만 명 이상의 어린이가 고귀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제약회사들은 이윤이 적은 개도국을 위한 백신 개발과 공급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부국들은 빈국의 전염병 확산을 막으려고 할 뿐 백신 개발에는 소홀하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1975년에서 1999년 사이 승인된 1400여 개의 신약 중 단 1%만이 빈국의 질병 치료를 위해 개발되었다고 한다.

국제백신연구소(IVI)와 같은 비영리 기관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에 세계본부를 두고 있는 IVI는 새로운 백신의 개발과 도입을 촉진함으로써 이러한 백신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설립된 세계 유일의 ‘백신 개발 국제기구’이다.

현재 IVI는 20여 개국에서 특정 질병이 얼마나 심각하며, 개발된 백신이 그 지역에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등을 조사함으로써 개도국의 백신 도입을 촉진하고 있다.

IVI라는 국제기구가 우리나라에 본부를 두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전후 어려웠던 시절 국제사회에서 받은 도움을 이제 개도국 어린이를 위한 인도적 백신 사업을 지원함으로써 보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우리나라의 백신 관련 과학기술 및 산업 발전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의의도 있다.

이호왕 국제백신연구소 한국후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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