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지상파 TV 끄고 싶다”

  • 입력 2005년 8월 1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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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영방송에서 성기 노출 사고와 며느리가 시어머니 뺨을 때리는 장면 등 사회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내용이 방송되는 사례가 잇따라 물의를 빚고 있다. 특히 KBS와 MBC는 노무현(盧武鉉) 정부 출범 이후 보도 및 시사 프로그램의 편파성 시비에 휘말린 데 이어 최근에는 교양 및 오락프로그램에서도 논란의 소지가 있는 내용이 담긴 프로그램들을 잇달아 내보내고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방송의 윤리와 공영성을 담보하는 방송사 내부의 게이트키핑(프로그램 내용의 취사선택 및 품질관리 과정) 시스템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빈번한 방송사고=지난달 30일 오후 방영된 MBC ‘음악캠프’ 생방송에서 퍼포먼스팀 멤버 2명이 바지를 내리고 춤을 춰 이들의 성기가 노출된 장면이 5초 동안 그대로 방영됐다. 이에 앞서 지난달 27일 KBS 2TV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에선 며느리가 손자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며 시어머니의 뺨을 때리는 장면이 방송됐다.

이 밖에도 KBS 2TV ‘생방송 시사투나잇’의 한나라당 전재희(全在姬) 의원 누드 패러디(3월 15일), 2박 3일간 잠 안 자고 버티기를 거짓 연출한 MBC TV의 ‘파워TV’(6월 12일) 등 지상파 방송의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허술해진 내부 제작 시스템=이 같은 방송사고의 1차 원인은 공영성에 대한 제작진의 인식 부족과 게이트키핑 기능의 약화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음악캠프’ 사고의 경우 제작진은 문제의 출연자들이 누구인지조차 확인하지 않고 생방송에 출연시켰다. ‘럭스’의 리드보컬 원종희 씨가 사고 후 인터뷰에서 “평소 홍익대 앞 무대에선 맥주병도 깨고 기타도 부수고 옷을 벗는 공연을 해 왔다”고 말한 점을 비춰볼 때 방송사고 가능성을 사전에 대비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방송사 내부의 게이트키핑 기능이 이처럼 허술해진 것은 구조적인 원인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KBS의 경우 정연주(鄭淵珠) 사장이 지난해 8월 개혁조치의 하나로 대(大)팀제를 도입한 뒤 팀장 한 사람이 팀원 수십 명을 관리하게 되면서 중간 간부의 게이트키핑 기능이 무력화됐다는 사내외 비판이 제기됐었다. MBC의 경우 최문순(崔文洵) 사장 취임 이후 중간 간부의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시청률 경쟁에 따른 일선 제작진의 과잉 의욕과 실수를 걸러 주는 여과층이 약해졌다는 게 중론이다.

사전심의의 부실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KBS의 경우 3월 내부 감사 결과 사전심의를 하지 않고도 방송위원회에는 한 것처럼 허위 보고한 사실이 밝혀졌다. 방송위에 따르면 지난해 10∼12월 MBC와 SBS의 프로그램 사전심의 비율은 각각 43.5%와 42.5%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제재의 한계=공영성을 잃은 방송사고에 대한 방송위의 징계는 솜방망이에 그치고 있다. 2000년 통합 방송법 제정 당시 방송출연금지 등의 조항이 방송 현업 종사자에 대한 부당한 제재라는 이유로 삭제됐다. 이번 성기 노출 파동의 경우에도 출연자에 대한 징계보다는 방송사에 대한 제재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등 선진국에선 지상파 방송의 윤리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지난해 2월 미식축구 슈퍼볼 경기 하프타임 쇼 중계 도중 가수 재닛 잭슨의 가슴이 드러나는 장면을 2초간 방영한 CBS에 55만 달러(약 5억50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숙명여대 강형철(姜亨澈·언론정보학부) 교수는 “공영방송은 사회의 풍속이나 관념에서 지나치게 벗어난 내용을 여과 없이 방송해선 안 된다”며 “사회적 마이너리티의 모습을 보여 주려는 방송사의 시도가 부쩍 활발해졌고 그 취지를 이해하지만 그럴수록 엄격한 내부 시스템을 통해 그들이 가진 일탈성을 사전에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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