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검사들의 결혼과 삶

  • 입력 2005년 8월 1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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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에도 ‘여풍’이 매섭다. 올 2월 21일 법무부 신임 검사 임용식 때는 36명의 여성 검사가 임명장을 받았다. 역대 최대 규모다. 하지만 진정한 여성 검사 시대는 직함 앞에 ‘여’라는 수식어가 사라질 때에 열린다는 게 여성 검사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검찰에도 ‘여풍’이 매섭다. 올 2월 21일 법무부 신임 검사 임용식 때는 36명의 여성 검사가 임명장을 받았다. 역대 최대 규모다. 하지만 진정한 여성 검사 시대는 직함 앞에 ‘여’라는 수식어가 사라질 때에 열린다는 게 여성 검사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법조계에 ‘여풍(女風)’이 거세다. 그러면 그 여풍은 여성 법조인 개개인의 일상생활에도 새로운 ‘바람’일까. 남자가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검사가 되면 결혼할 때 ‘열쇠 3개’의 프리미엄을 갖는다는 것이 통설. 그러나 여자가 판검사의 지위를 얻었을 때 갖게 되는 부가가치는 남자의 경우와 어떻게 다를까? 그들 손에도 ‘열쇠 3개’가 쥐여질까? 또 그들은 누구와 결혼하며 가사노동과 육아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남자’와 ‘결혼’에 대해 그들은 어떤 판결문을 쓸까.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여성으로서 가장 높은 사회적 지위에 오른 여성 판검사들의 여권(女權)은 어느 정도인지 서울지역 기혼 여판사, 여검사들의 사생활 취재를 통해 조명해 본다.》

서울지역 여성 판검사들의 결혼 가사 육아 등을 취재 분석한 결과 여성 판검사들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도 불구하고 결혼에 관해서는 역시 ‘가부장제(家父長制) 속의 여성’이었다.

물론 대부분 ‘좋은 집안’의 ‘좋은 상대(남자)’와 결혼했다. 그러나 ‘남성 판검사’가 ‘남성’과 ‘판사 검사’라는 지위의 결합으로 상대방(여자)에게 최고의 조건을 요구하는 위력을 발휘하는 것과는 대조가 됐다. 특히 결혼 뒤 가사와 육아에 관한 한 일반적인 맞벌이 여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성 판검사들 절반은 ‘내부에서 조달’=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원단지의 여판사 100명과 서울지역 여검사 30명 가운데 결혼을 한 여성 판검사는 86명. 이 가운데 82명의 남편 직업을 개별 취재를 통해 확인했다.

이들의 남편 82명 가운데 42명(51%)이 변호사(23명) 판사(7명) 검사(7명) 군법무관(5명)으로 현직 또는 예비 법조인이었다. 다음으로는 교수(12명) 의사(10명) 회계사(2명) 공무원(2명) 기자(2명) 순. 국회의원과 기업체 대표도 한 명씩 있었다.

법조인 외에 교수 의사까지 포함하면 여성 판검사들의 남편들 가운데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의 비율은 78%(64명)에 달했다.

▽중매시장에서의 인기는 ‘별로’=여성 판검사들은 그들의 남편 가운데 압도적으로 법조인이 많은 것에 대해 “사법연수원 때 친구관계로 시작해 연애하고 결혼하는 것 외에 다른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서울고법의 한 여성 예비판사는 “연수원에 입학하는 순간 결혼 상대자의 폭이 좁아진다는 생각에 연수원 동기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결혼문제였다”고 말했다. 연수원 때 (결혼문제) 해결 못하면 ‘끝장’이라는 생각이 많다는 것.

중매시장에서 여성 판검사들의 인기가 그리 높지 않은 것도 중요한 이유다.

서울고법의 한 남자 부장판사는 “참한 여판사가 있어 잘 아는 벤처기업 사장에게 소개를 시켜 주려 했었는데 주위에서 펄쩍 뛰며 말렸다”고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주위에서 말리는 이유는 “남자 집안에서는 ‘판사’인 여성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것.

▽“다른 남자, 다른 생각에도 더 관심을”=남자와 여자를 불문하고 연륜이 있는 법조인들은 여판사 여검사와 남자 법조인들의 결합이 꼭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지적한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잘해 줄 것이란 측면에서는 좋지만 해당 판사 검사 부부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이 너무 좁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법원장 출신의 한 변호사(남성)는 “판사 검사는 학창시절과 사회생활 할 것 없이 법조라는 특정한 분야에만 갇혀 있기 때문에 세상을 보는 눈이 좁을 수밖에 없다”며 “거기다가 결혼까지 같은 법조인하고 하면 ‘법밖에 모르는 사람’이 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결혼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인 여판사들이 늘고 있다.

서울고법의 한 중견 여판사는 “10년 전만 해도 연수원 다니면서 이성교제는 생각도 못했지만 요즘은 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예비 여판사나 초임 여검사들은 연수원 때부터 비법조인과 교제하는 등 연애나 결혼에 대해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육아-가사, 맞벌이 여성과 차이 없어”▼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여성 판사들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수입 덕분에 일반적인 맞벌이 여성들보다는 비교적 수월하게 가사와 육아를 해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전·현직 여성 판사들은 “법조인들도 가정 안에서만큼은 보통의 부부의 고정적인 역할이 그대로 반복된다”며 “오히려 다른 분야보다 더 보수적”이라고 말했다.

가정 내 남성과 여성의 역할에서 가장 많이 부닥치는 부분은 아이 키우는 문제.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설거지 빨래 등은 남편과 나눠 하지만 육아까지 남편과 분담하기는 어려운 문제”라며 “남편이 자처해도 선뜻 맡기기 어려워 결국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 신세를 진다”고 말했다. 육아에 있어서만큼은 또 다른 ‘여성(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에게 ‘고통’을 떠넘기는 셈.

다른 전문직 여성들처럼 돈을 주고 아이 봐주는 사람을 부르기도 하지만 육아나 아이 교육은 다른 가사노동과 달라 돈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여성 판사들의 생각이다.

비교적 경력이 짧은 법원의 배석판사들이나 예비판사들은 “특히 결혼 뒤에는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부담뿐 아니라 법조계의 보수적인 분위기도 실감한다”고 말한다.

서울가정법원의 중견 여성 판사는 “법조계를 택한 여성들의 성향 자체가 보수적인 것도 한 가지 이유”라며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요구하는 역할을 비판적으로 봐야 하지만 ‘모든 것을 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여성 법조인들 스스로가 자신을 괴롭히는 면도 있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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