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텔스’ 미국版-한국版 왜 다를까

  • 입력 2005년 8월 1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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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국내 개봉한 ‘스텔스’는 미국에서 개봉한 ‘스텔스’의 ‘한국 편집판’이다. 미국 개봉작에서는 주인공 중 한 명이 북한 영토에 추락해 탈출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한국 편집판’에는 북한이 아닌 ‘미국과 외교관계가 없는 곳’으로 표현된다. 사진 제공 소니픽쳐스 릴리징코리아
지난달 28일 국내 개봉한 ‘스텔스’는 미국에서 개봉한 ‘스텔스’의 ‘한국 편집판’이다. 미국 개봉작에서는 주인공 중 한 명이 북한 영토에 추락해 탈출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한국 편집판’에는 북한이 아닌 ‘미국과 외교관계가 없는 곳’으로 표현된다. 사진 제공 소니픽쳐스 릴리징코리아
질문 한 가지.

지난달 28일 전 세계에서 동시에 개봉된 할리우드 영화 ‘스텔스(Stealth)’의 미국판과 한국판의 차이점은?

만약 “한국판에는 한글 자막이 있다”라고만 말했다면 썰렁한 대답이 되고 말 것이다. 본보 취재진이 이날 미국 극장에서 본 ‘스텔스’와 한국에서 관람한 ‘스텔스’는 큰 차이가 있었다.

우선 미국판에서는 ‘스텔스’ 조종사로 나온 여배우 제시카 비엘(카라 역)이 불시착한 장소가 북한(North Korea)이라는 것을 표시한 지도까지 친절하게 등장한다.

또 미국에서 상영된 영화에서는 부상한 여주인공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병사들이 북한군이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영화 곳곳에서 “잡아라”라는 외침을 포함해 한국말들이 자주 나오고 인공기도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28일 국내에서 개봉된 한국판에서는 북한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스텔스 편대의 카라 중위가 추락한 지역이 북한이 아닌 ‘미국과 외교관계가 없는 곳’으로 표현된다. 기와집이 보이고 카라 중위를 쫓는 군인들이 동양인이지만 북한말은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비밀은?

이 영화의 국내 배급을 맡은 소니픽쳐스 릴리징코리아㈜의 권혁조 대표가 3개월 전 미국에서 최종 편집이 끝나지 않은 ‘러프 컷’을 보다 북한이 등장하는 것을 알고 미 소니픽쳐스에 수정을 요구한 것이다.

6자회담 등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 시작되고 10대 후반∼20대 중반의 국내 주 관객층이 대체로 북한에 호의적인 인식을 갖고 있어 북한이 등장할 경우 국내 흥행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미 소니픽쳐스는 이 요구를 받아들여 이례적으로 특별히 ‘한국 편집판’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한국판과 비(非)한국판이 달라진 것이다.

물론 이 영화에서 북한이 ‘주적’으로 설정된 것은 아니다. 다만 비엘이 우연히 불시착한 장소일 뿐이다. 그렇지만 북한군은 비엘을 잡으려는 쪽이고, 또 다른 주인공인 벤으로 나오는 조시 루커스는 비엘을 구하기 위해 스텔스를 타고 와서 북한군을 맹공하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스텔스기가 마구 폭격을 하는 국가는 북한을 포함해 테러리스트와 악당이 암약하는 미얀마, 타지키스탄이다.

소련이라는 주적이 사라진 요즘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이처럼 자주 북한이 ‘좋지 않은 쪽’으로 등장한다. 실제로 이날 극장에서 만난 한 미국인 관객은 “북한은 요즘 핵문제로 문제를 일으키는 국가가 아닌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영화사가 ‘한국 편집판’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한국 영화 시장이 커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 영화 관객들이 미국판과는 다른 ‘한국 편집판’을 봐야 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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