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헌법해석 ‘고무줄’…대연정 관련 발언 문제점

  • 입력 2005년 7월 30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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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2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을 방문해 권력 이양을 통한 대연정 문제를 놓고 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노 대통령은 대연정 제안에 한나라당 등 야당이 반대한 것은 물론이고 여권 내부에서도 분란 조짐이 일자 이날 기자간담회를 자청한 것으로 보인다. 석동률 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2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을 방문해 권력 이양을 통한 대연정 문제를 놓고 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노 대통령은 대연정 제안에 한나라당 등 야당이 반대한 것은 물론이고 여권 내부에서도 분란 조짐이 일자 이날 기자간담회를 자청한 것으로 보인다. 석동률 기자
권력 이양을 전제로 한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9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헌법 위반 등의 비판을 반박했다.

자신의 제안을 한나라당이 일축한 것은 물론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혼란스럽다는 반응이 나오자 “어제 제안은 글자 한자 한자에 의미의 차이를 꼼꼼히 따져 가면서 쓴 글인데 진의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다”며 간담회를 자청한 것.

노 대통령은 “4·30 재·보선으로 여당의 과반수가 무너졌을 때부터 준비했던 논리”라며 “발표 시점을 놓고 고심하다가 종합주가지수가 1,000포인트를 넘어 안정되는 것을 보고 정치개혁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권력 이양은 위헌적 발상?=노 대통령은 프랑스 동거정부의 예를 들면서 대연정 구성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프랑스 동거정부에서 대통령과 총리 및 내각의 권한 배분은 헌법 규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치관행으로 이뤄졌고, 우리 헌법은 프랑스 헌법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 따라서 “한국에서도 정치적 합의로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을 적절하게 정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고려대 장영수(張永洙·법학) 교수는 “지금의 헌법으로는 대통령의 마음만 바뀌면 권한 배분이 언제든지 원상태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법적 효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또 “헌법은 그 사회의 변화와 필요에 맞게 유연하게 해석해야 한다. 언어와 문구, 표현이 갖고 있는 개념을 중심으로 해서 어떤 선험적인 법 원리를 찾아내려는 개념법학적 해석은 시대의 변화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도 장 교수는 “개념이 분명해야 전달되는 내용이 명확해지는데 노 대통령의 제안은 개념이 불명확하다”며 “야당에 총리 지명권을 주겠다는 것은 우리 헌법상 야당이 추천한 인사를 총리로 임명하겠다는 것이고 이는 ‘권력 이양’이 아니라 ‘권력 행사’가 된다”고 지적했다.

▽양당의 정책노선 차이 극복 가능한가?=노 대통령은 1966∼69년 독일 기민당-사민당 간의 대연정과 1947∼66년 오스트리아 사회당-국민당 간 대연정의 예를 들면서 “정체성이 다른 정당끼리 대연정을 해서 성공한 역사가 있다”고 말했다. 또 “두 나라의 사례에 비해 지금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차이는 더 적다”고 했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역사성이 다른 사람들이 지역에 따라 당을 나눈 탓에 양당 내에는 정책노선이 다르면서도 당을 함께하는 스펙트럼의 큰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

노 대통령은 또 “정책이 결정적으로 결론이 나는 곳은 국회”라면서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연정이라고 하더라도 국회의 토론구조는 그대로 살아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정책을 놓고도 “부동산 문제는 양당이 같이 가고 있고, 교육 정책은 토론하면 되고, 국가보안법 문제는 진지하게 대화하면 답이 쉽게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이정현(李貞鉉) 부대변인은 “열린우리당은 분배 위주의 경제 정책을 갖고 있고 외교안보 정책에도 한나라당과 큰 차이가 존재한다”고 반박했다. 정치권에서는 과거 DJP(김대중-김종필) 공동정부 때처럼 정책노선의 차이 때문에 국정이 표류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국민이 준 정권 맘대로 넘길 수 있나?=노 대통령은 “국민이 나에게 정권을 맡겨 준 취지가 정권을 걸고서라도 역사를 위해 개혁하라는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3당 합당이 정권을 위해서 제도를 붕괴시킨 것이라면 나는 제도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정권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제안을 한 점에서 전혀 다르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헌법학자들은 국민이 선거를 통해 결정한 정부 구성을 바꾸는 데에는 국민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헌법에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이 정해져 있는 만큼 권력 이양을 위해서는 그에 부합하는 개헌 절차를 밟는 게 옳다”고 말했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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