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제균]실패한 佛 동거정부에선 배울 게 없다

  • 입력 2005년 7월 30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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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 리오넬.’

2002년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프랑스 언론은 리오넬 조스팽 총리에게 이런 별명을 붙였다. 프랑스어로 산타클로스가 ‘페르 노엘’이니 이 별명은 의역하면 ‘산타 리오넬’쯤 된다.

그해 대선 출마를 선언한 조스팽 총리는 산타클로스처럼 선심정책을 남발했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도 출마를 선언했지만 ‘동거(코아비타시옹·Cohabitation)정부’ 아래서 선심정책은 총리의 몫이다. 총리가 실질적으로 내정을 총괄하기 때문이다.

보다 못한 로랑 파비우스 경제재무장관이 제동을 걸었다. “선심정책을 그만두라. 정부에 숨겨진 금고가 있는 게 아니다.”

조스팽 총리는 대통령의 고유 영역인 외교에까지 침범했다. 그는 유럽 내 정상회의에 시라크 대통령과 나란히 참석하기도 했다. 유럽의 정상들이 시라크 대통령을 제쳐놓고 실질적 국정 운영자인 조스팽 총리와 만나려고 애쓰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이에 시라크 대통령도 TV 생방송에 나가 조스팽 총리의 실정(失政)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대통령이 국정운영의 실패를 비판하는,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국정의 두 축인 대통령과 총리의 갈등으로 당시 프랑스는 조용한 날이 없었다. 1997년 출범한 동거정부 전반기에 순항했던 경제도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들의 ‘불안한 동거’는 2002년 대선과 총선에서 시라크의 우파가 압승하면서 끝났다.

28일 ‘한나라당에 사실상 정권 이양’을 제안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29일 기자간담회에서 “프랑스 동거정부는 비교적 원만하게 운영돼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프랑스 동거정부가 원만하게 운영되지 않았던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노 대통령은 또 “프랑스는 국회와 대통령의 임기가 함께 가도록 고쳐서 현재의 제도(동거정부)를 그냥 두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통령(7년)과 국회의원(5년)의 임기를 5년으로 같게 한 이유는 대통령에 대한 견제심리 때문에 동거정부가 출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프랑스에서 ‘실패’로 판명돼 사실상 사문화된 제도를 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의로 다시 떠올리는 것은 씁쓸한 일이다.

박제균 정치부기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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