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성희]취업주부와 전업주부 ‘제로섬 게임’

  • 입력 2005년 7월 30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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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반상회에 갔는데 한 달 사이에 5000만 원이 뛰었대!”

“강남이 하도 떠들썩해서 이쪽(목동)은 안 알려져 있는데 우리 아파트도 많이 올랐어.”

북한산이 잘 보이는 서울 강북의 한 빌라형 주택에 살면서 직장에 다니는 이 여성은 친구들과 통화하다가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좋겠다. 축하한다”고 말은 하지만 쓰린 속을 달랠 길이 없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괜찮은 직장에 다니며 고교생 아들을 둔 이 여성은 시댁과 가깝다는 이유로 결혼과 함께 강북에 자리 잡은 것을 요즘처럼 후회해 본 적이 없다.

후회는 강남에 진출하지 못한 일뿐만이 아니다.

학창시절 자기보다 못하던 친구의 자녀들이 1등을 했네, 특수목적고를 갔네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잘못 살아 온 게 아닐까” 하는 고민에 밤잠을 설치게 된다. 중간 정도인 아들의 성적이, 바쁘다는 이유로 제대로 챙겨 주지 못한 자기 탓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알게 모르게 여성들은 경제를 떠받치는 한 축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여성들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생활이 더 윤택하거나 더 행복하다는 신호는 감지되지 않는다.

취업 여성들이 주로 비정규직이나 자영업에 종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녀 교육과 부동산에 다걸기(올인)를 해 온 일부 전업주부보다 삶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업주부의 자녀가 공부를 잘하는 것은 세계 공통적 현상이다. 그러나 그 차이가 이토록 엄청난 것은 한국만의 현상이다. 사교육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자기 아이의 적성은 무엇인지, 어느 학원이 잘하는지를 파악해서 분초 단위로 아이들을 ‘관리’하는 것은 좋은 엄마의 필수조건이다.

“대낮에 레스토랑에 앉아 수다를 떠는 아줌마들을 보면서 한심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거기서 얻는 정보가 아이 교육과 재테크로 직결됩니다.”

선택하지 않은 삶에는 미련이 남기 마련이다. 하지만 전업주부는 미국에서도 괜찮은 선택이 되고 있는 모양이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전업주부가 늘고 있다. 1994년 450만 명이던 전업주부는 10년 후인 2003년 540만 명으로 늘었다. 이들의 88%가 자녀를 돌보기 위해 직업을 포기했다고 한다. 자녀 양육에 매진하는 것이 직장생활보다 더 경쟁력 있고 만족도도 높다고 판단하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해석이다.

직장이냐, 가정이냐. 1000만 여성이 일을 하는 시대지만 한국에서 아직도 여자의 운명을 이처럼 선명하게 가르는 선택은 없다. 그 선택을 더욱 ‘극적으로’ 만드는 장치가 바로 오락가락 교육제도와 널뛰기 부동산정책이다.

그런 생각이 든다. 한국적 현실에서 자아실현도 하고 돈도 버느라 자녀 양육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취업주부와, 자신은 희생했지만 부동산 투자와 자식교육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전업주부의 삶은 결국 영원한 제로섬 게임이 아닐까.

정성희 교육생활부장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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