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듣니? 난 본다!”

  • 입력 2005년 7월 30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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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낮 12시 56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MBC 방송센터 7층 라디오 스튜디오. ‘정선희의 정오의 희망곡’(낮 12시∼오후 2시)이 생방송으로 진행 중.

DJ 정선희는 음악이 나가는 동안 머리핀을 뺐다 꽂았다 한다. 스태프 1명이 들어와 스튜디오 안 컴퓨터로 홈페이지 화면에 뜬 청취자 메시지를 보며 서로 웃는다.

#낮 12시 58분. 2부 시작(오후 1시)이 가까워지자 오늘의 게스트인 가수 이승철과 린이 스튜디오에 입장. 시그널 음악이 나갈 때까지 정선희와 두 게스트는 수다에 열중한다. 이승철은 화장실에 다녀오려는 것인지 잠시 퇴장. 방송이 시작되자 흰색 셔츠 차림의 이승철은 신곡 ‘열을 세어 보아요’를 열창한다.

마치 스튜디오 창밖에 서 있는 것 같지만 ‘나’는 지금 인터넷으로 ‘정선희의 정오의 희망곡’의 ‘보(이)는 라디오’ 메뉴를 통해 라디오를 ‘보고’ 있다.


MBC라디오 '정선희의 정오의 희망곡'의 진행자 정선희가 라디오 방송을 진행 중이다. '보는 라디오'는 라디오 스튜디오 모습을 인터넷으로 보여 주면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사진 제공 MBC

○ 보는 라디오 시대

라디오를 들으며 사람들 누구나 갖는 궁금증. ‘음악이 나갈 동안 DJ는 뭘 할까? 화장실에 갈까 아니면 간식을 먹을까? 혹시 코를 후비며 방송을 진행하진 않을까?’

이런 상상을 만족시켜 주는 라디오가 생겼다. 바로 ‘보는 라디오’다.

“처음에는 평소처럼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채 스튜디오에 갔어요. 그랬더니 다들 ‘좀 그려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정선희)

‘보는 라디오’란 라디오 방송이 나가는 동안 인터넷을 통해 방송진행 중인 라디오 스튜디오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신종 서비스. KBS, MBC, SBS 등 방송사들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보는 라디오’ 코너를 정기 운영하고 있다. 각 방송사는 매일 1∼4개의 프로그램을 번갈아가며 ‘보는 라디오’로 방송한다. ‘시청자’ 반응도 뜨거운 편. KBS ‘유열의 음악앨범’(오전 9∼11시)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오전에 라디오를 들으며 집안일을 했는데 보는 라디오를 이용하다 보니 집안일을 못하겠다”는 주부들의 항의가 있을 정도.

○ 보는 라디오! 스튜디오를 바꾼다

청취자에게서 “‘보는 라디오’에 열중하느라 집안일을 못하겠다”는 항의도 듣는 KBS 라디오 ‘유열의 음악앨범’. 사진 제공 KBS

‘보는 라디오’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라디오 스튜디오는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편한 옷차림으로 나타나 음악이 나가는 동안 엎드려 쉬거나 간식을 즐기던 DJ들은 불편을 호소하기도 한다.

KBS ‘이금희의 가요 산책’(오후 4∼6시) 진행자 이금희 씨는 “방송 도중 커피를 마시면 ‘언니 뭐 먹어요’라고 게시판에 글이 바로 뜨기 때문에 청취자들이 이웃처럼 느껴진다”며 “하지만 ‘보는 라디오’를 하는 날이면 한 번쯤 거울도 더 보고 신경 쓰게 되는 불편함도 있다”고 말했다.

MBC ‘박경림의 심심타파’(밤 12시∼오전 2시)의 DJ 박경림은 스스로 ‘보는 라디오’를 즐긴다. 노래가 나가는 동안 신나게 춤을 춰 보는 이를 즐겁게 하는 것.

보는 라디오 애용자인 박치훈(31·회사원) 씨는 “진행자나 초청 연예인들의 꾸미지 않은 모습을 볼 수 있는 재미는 같은 영상물이라도 TV와는 다른 것”이라고 평했다.

한편에서는 ‘보는 라디오’ 때문에 라디오의 장점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윤석훈 KBS 2FM 팀장은 “라디오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체인데 스튜디오를 다 보여주다 보니 라디오만의 신비감이나 아날로그적 감수성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KBS 라디오국 장옥님 PD는 “처음에는 ‘라디오까지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라는 회의적인 반응이 많았지만 눈으로 스튜디오를 직접 보는 체험을 통해 청취자들의 친밀감이 극대화돼 오히려 라디오의 장점이 잘 살아난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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