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인공지능 전투기의 반란…‘스텔스’

  • 입력 2005년 7월 29일 03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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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장난 같지만 영화 ‘스텔스(Stealth)’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스텔스’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너무 미끈해서 눈을 떼기 힘든 ‘스텔스기’의 매혹적인 몸매 자체다. 이 영화는 3명의 매력적인 남녀 파일럿을 등장시킨 뒤 이들에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얹어가는 듯한 시늉을 하지만, 기실 카메라가 노골적으로 집중하는 건 적의 탐지시스템에 잡히지 않는 은폐기술과 정밀 유도폭탄을 장착한 미국의 최첨단 전폭기 ‘스텔스’가 보여주는 물신(物神)화된 보디라인이다.

이 영화의 전략은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에피소드들을 촘촘히 배치해 관객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화면(혹은 스텔스기)이 갖는 압도적인 스피드와 시각효과, 그리고 강력한 상상력으로 관객의 뇌기능을 아예 정지시켜 버리는 데 있다.

스텔스기 3대로 이뤄진 ‘테론’ 편대에 3명의 남녀 파일럿이 선발된다. 리더인 벤(조시 루커스)과 벤이 사랑하는 여성 카라(제시카 비엘), 그리고 신중한 헨리(제이미 폭스)가 그들. 최고 실력을 자랑하던 이들에게 어느 날 새로운 편대원이 추가 투입된다. ‘그’는 바로 최첨단 인공지능을 가진 무인 스텔스기인 ‘에디’. 갑자기 인공지능 회로에 문제가 생기면서 통제 불능이 된 ‘에디’는 러시아를 폭격하기 위해 쏜살같이 날아가고, 3명의 편대원은 ‘에디’를 막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 건 카메라의 운동감이다. 카메라의 운동은 판에 박힌 내용의 이 영화를 꿈틀거리게 만드는 내러티브, 그 자체다. 카메라는 스텔스기의 조종석 바로 1m 위에서 달라붙듯 따라가면서, 변화무쌍한 기체의 움직임을 구토가 나올 만큼 역동적으로 잡아낸다. 대기권 끄트머리에서 1초 만에 지상의 빌딩까지 쓱 내려오거나, 스텔스 기체를 유혹적으로 훑다가 갑자기 쑥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복잡한 전자회로를 클로즈업하는, 서커스에 가까운 카메라 워크는 마치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는 것 같은 독특한 시각 체험을 관객에게 안겨 준다. 헨리의 스텔스기가 전속력으로 수직 하강하면서 테러리스트들이 모인 빌딩의 옥상 한복판에 내파폭탄을 꽂아 넣는 장면은 가능과 불가능을 생각하기 전에 일단 굉장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스텔스 편대를 이끄는 3명의 주인공. 왼쪽부터 헨리(제이미 폭스), 카라(제시카 비엘), 벤(조시 루커스). 사진 제공 무비앤아이

애당초부터 이 영화를 ‘즐기지’ 않고 ‘뜯어본다’고 작심한다면, 무척 미국적인 이 영화가 ‘아시아의 한 소국’에 사는 당신의 심기를 건드릴지도 모르겠다. 테러리스트라고 그들이 찍으면 미얀마든 타지키스탄이든 스텔스기가 당장 날아가 (민간인이 희생될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상투적인 망설임 끝에) 폭격해 초토화하는가 하면, 아시아의 한 ‘엉뚱한’ 나라에 불시착한 동료 파일럿을 구하기 위해 제 멋대로 국경을 넘어 들어가 불바다로 만들어도 된다는 이 영화의 태도는 불학무식하다. 심지어 무인 스텔스기는 ‘인터넷에서 스스로 내려받은’ 미국 록 음악을 요란하게 틀어놓은 채 융단폭격을 ‘즐기니’ 말이다! 근데, 더 큰 문제는 1억3000만 달러(약 1300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이 무지막지한 영화를 보는 순간 아무 생각 없이 신나고 통쾌해진다는 거다.

사실 기고만장한 이 영화의 태도보다 더 미국적인 건 바로 여배우 제시카 비엘의 비주얼이다. 마치 단단한 엉덩이로 젖가슴을 바꿔치기한 듯한 그녀의 압도적인 상체와 웬만한 여자 허벅지 굵기의 근육질 팔뚝이 이뤄내는, 섹시하기보다는 강력한 그녀의 몸은 그 자체가 미국이다.(어쩌면 그녀가 최근 ‘텍사스 전기톱 대학살’ ‘블레이드 3’ 등에 연달아 출연하며 급부상하는 것도 9·11테러의 후유증(?)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사실은 국내에 이 영화의 원본이 아닌 ‘한국용 특별판’이 상영된다는 점. 당초 북한에 불시착한 카라를 구하기 위해 벤의 스텔스기가 북한군을 맹공하는 내용이 담겼으나, 이 영화의 국내 직배사인 소니픽쳐스릴리징코리아 측이 ‘최근 조성되는 남북한 화해 무드를 불필요하게 자극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미국 본사에 한국 상영을 위한 재 편집판을 요청한 것. 이에 따라 ‘한국판’에는 원판과 달리 북한을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대사나 표시가 등장하지 않는다.

‘분노의 질주’ ‘트리플 엑스’의 롭 코언 감독. 28일 개봉. 12세 이상.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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