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권력이양 제의]법적 문제 없나

  • 입력 2005년 7월 29일 03시 08분


코멘트
노무현 대통령이 28일 ‘열린우리당 당원 동지 여러분께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으로 대연정을 제안한 글을 띄운 청와대 홈페이지 바탕화면 모습. 노 대통령은 대연정은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열린우리당이 참여하는 형태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28일 ‘열린우리당 당원 동지 여러분께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으로 대연정을 제안한 글을 띄운 청와대 홈페이지 바탕화면 모습. 노 대통령은 대연정은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열린우리당이 참여하는 형태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8일 제안한 ‘사실상의 권력 이양’은 현행 대통령 중심제 권력 구조를 의원 내각제로 바꾸지 않는 한 실현되기 힘들다는 지적이 많다. 다수 헌법학자와 정치학자들은 현행 헌법상 대통령의 권한은 임의로 포기하거나 양도할 수 없다는 견해를 보였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에 ‘정권 교체’라고 할 정도의 권력을 주겠다는 것은 대통령 중심제 권력구조인 현행 헌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결과라는 얘기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권력 위임은 대통령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소수다.

이런 중대한 제안을 하면서 한나라당에 사전 설명을 하지 않았다는 점과 청와대 홈페이지에 열린우리당 당원에게 띄우는 서신(書信) 형태로 했다는 점에서 제안의 절차와 형식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헌법에서 연정 가능한가?=노 대통령은 서신에서 “우리 헌법은 단순한 대통령 중심제 헌법이 아니다”라며 “정치적으로 합의가 되면 헌법에 위배됨이 없이 내각제에 가까운 권력 운용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져 있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의 장관 겸직을 허용하는 헌법 규정상 한나라당 소속 국무총리에게 대통령의 권한을 이양하고 그가 내각을 통할하는 방식으로 정권을 운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학자들의 견해는 다르다. 이는 ‘초헌법적, 위헌적 발상’이라는 지적이다.

숭실대 법학과 강경근(姜慶根) 교수는 “헌법은 대통령제가 원칙이므로 이를 내각제 수준으로 변질시키는 것은 위헌”이라고 말했다. 국민이 구성해 준 정치세력이나 정부구성을 국민의 동의 없이 새롭게 바꾸는 것은 국민의 주권적 권한에 반한다는 것이다.

고려대 법학과 장영수(張永洙) 교수는 “노 대통령의 구상은 사실상 내각제를 하겠다는 것이나 내각제로의 통치구조 변화는 국민투표 등 개헌절차를 밝아야 할 사안”이라며 “대통령이 야당과 정책 공조나 협조를 추진하는 것을 내각제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대통령 권한 이양 가능한가=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내각제 수준의 권력을 갖는’ 연정을 제안했다.

서울대 법대 정종섭(鄭鍾燮) 교수는 “대통령 중심제에서는 연정을 하더라도 정부 정책의 최종 책임은 결국 대통령이 지게 돼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대통령의 권한 이양이라는 것은 성립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권한을 대폭 위임해 재량권을 많이 주는 게 아니고 정말 권한을 다 주려면 대통령이 하야하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출신의 황도수(黃道洙) 변호사는 “국무총리가 실질적으로 권한을 행사하고 대통령은 도장만 찍는 식으로 운영할 수는 있겠지만 불안정한 상태가 될 수 있다”며 “권력을 이양하기 위해서는 헌법 개정 절차가 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영수 교수는 “현행 헌법상 대통령의 권한은 임의로 제3자에게 넘길 수 없게 돼 있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서울대 법대 최대권(崔大權) 명예교수는 “대통령을 선출했으면 이후는 대통령이 알아서 하면 된다”며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어떻게 한다는 것에 대해 헌법적으로 위배된다고 할 수는 없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대연정, 佛 이원집정부제와는 근본적 차이

노무현 대통령이 28일 제안한 ‘사실상의 권력 이양’이 실현된다면 프랑스식 ‘동거(코아비타시옹·Cohabitation)정부’에 가장 근접한 형태가 될 수 있다.

프랑스는 지금까지 대통령과 정파가 다른 총리가 내정을 총괄하는 좌우 동거정부를 세 차례 거쳤다. 하지만 ‘한나라당 주도의 대연정’이 돼도 프랑스의 동거정부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우선 프랑스 동거정부는 총선에 의해 탄생했다. 좌파든, 우파든 총선에서 승리한 당의 수장이 총리가 됐다. 민의의 심판인 총선이 아닌 대통령의 제안으로 동거정부가 이루어지는 것은 프랑스에선 상상하기 어렵다.

더욱이 한국과 프랑스는 권력구조가 다르다. 프랑스는 대통령이 외교와 안보를 담당하는 국가원수, 총리가 그 외의 모든 내정을 총괄하는 이원집정부제다.

프랑스 동거정부의 총리도 한국처럼 대통령이 지명한다. 하지만 프랑스 총리는 내각의 인사 및 예산권을 쥐고 흔드는 명실상부한 행정부 수반이다. 내정의 책임도 총리가 진다. 우파인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좌파인 리오넬 조스팽 총리가 ‘동거’한 3차 동거정부의 명칭도 ‘조스팽 정부’였다.

그러나 대통령제인 한국에서는 아무리 ‘분권형 대통령제’를 실시한다 해도 국무총리가 대통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각료 임명권을 비롯한 국정 전반의 인사권을 대통령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의 최종책임도 대통령이 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동거정부는 프랑스에서도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판명되어 검증이 끝난 제도다. 동거정부의 비효율과 무능력의 폐해에 진저리를 친 프랑스 국민은 일부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임기(7년)를 국회의원(5년)과 같은 5년으로 고쳤다.

대선과 총선을 같은 해에 치러 이전처럼 대통령에 대한 견제심리 때문에 동거정부가 탄생하지 못하도록 한 것. 이에 따라 3차 동거정부 직후인 2002년 치러진 대선과 총선에서는 모두 시라크 대통령의 우파가 압승했다.

박제균 기자 phar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